만기 시점에 가격 회복하면 원금+이자 정상상환
러시아의 반대로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과 비회원국 간 협의체)’가 감산 합의에 실패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도리어 증산을 선포하면서 WTI 국제유가 선물이 장외시장에서 30% 넘게 폭락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약 1조원의 파생결합증권(DLS)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DLS는 국제유가나 금, 은 등 원자재와 채권금리, 신용 등을 기초자산으로 해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기간에 일정 범위 내에 머물면 3~10%의 금리를 제공하는 파생상품이다. 통상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보다 40~60% 하락하지 않으면 약정 이자를 지급하는데 국제유가가 짧은 기간에 가파르게 급락해 적잖은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으로 WTI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미상환 DLS는 9140억원, 브렌트유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미상환 DLS는 5369억원이다. 두 기초자산을 한꺼번에 사용하는 DLS도 있는 만큼 대략 1조~1조3000억원이 국제유가 DLS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모 DLS만 집계한 것으로, 사모 DLS까지 포함하면 국제유가 DLS 발행 잔액은 더 클 수 있다. 공모와 사모를 합쳐 전체 미상환 DLS는 6일 기준 15조4878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상환되지 않은 DLS는 9일을 기점으로 대부분 손실구간(녹인)에 진입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 하락 속도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이다.
배럴당 WTI 가격은 지난 1월 6일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피살 당시만 해도 63.27달러였으나 두달여만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 6일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10.07% 하락한 데 이어 9일에는 감산 합의 실패로 장외에서 한때 34.80% 폭락해 27.34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주간 발행 규모를 보면 국내에서 발행된 국제유가 DLS는 대략 34~36달러 수준에 녹인 구간이 몰려 있다. 지난주말쯤 DLS에 가입한 투자자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상품이 녹인 구간에 진입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DLS는 녹인 구간에 진입했어도 만기 시점에 다시 70~80%의 가격을 회복하면 원금은 물론 이자까지 포함해 정상 상환된다. 지난 2016년 3월에도 30달러 밑으로 추락했던 유가가 다시 70달러선까지 회복하면서 상당액이 정상 상환된 바 있다.
변동 폭이 너무 큰 만큼, 유가 전망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극단적인 치킨게임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론이 더 큰 상황이다. 하나금융투자의 원자재 담당인 전규연 애널리스트는 WTI의 경우 배럴당 25달러까지 예상하고 있다. 전 애널리스트는 "러시아는 유가 생산 손익분기점이 40달러대 초중반으로 예상된다"면서 "사우디 또한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 위해 단기적으로 치킨게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안재만 기자(hoonpa@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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