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협력 넘나드는 한미일 현재진행형 역사의 속내 살펴
역사 저술가 박영규 씨가 한미일 3국 지도자의 삶과 정치, 막후 이야기로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미래 행보를 전망하는 신간 '트럼프, 아베, 문재인'을 펴냈다.
'실록사가', '역사 대중화의 기수'로 일컬어지는 박씨는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비롯해 지난 20여 년 동안 30여 권의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이번 신간은 갈등과 협력, 대립과 교류를 숨 가쁘게 넘나드는 한미일의 복잡미묘한 관계를 최정상 리더의 삶과 생각, 행동으로 살펴본다. 반전의 기업형 현실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본 보수 정치의 아이콘인 아베 신조 총리, 대한민국 시민 권력의 상징인 문재인 대통령의 인생 궤적을 파악하면 이중 행보로 감추고 있는 심중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독일 함부르크 시내 미국총영사관에서 열린 3국 정상만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제1부 '너무나 다른 세 정상의 인생 여정'은 가정환경, 기질과 성정, 청년 시절과 집권까지의 인생 여정을 조명한 뒤 그들이 어떤 포부를 펼치고 행보를 이어나갔는지 짚는다.
이들 지도자는 각각 사업가, 회사원,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저마다 다른 경로로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책은 부동산 사업가였던 트럼프가 어떻게 백악관의 주인이 됐는지,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배경이 아베가 일본 최장수 총리가 되는 데 얼마나 강하게 작용했는지, 한사코 권력을 마다했던 문재인이 시민 권력의 상징이 돼 청와대로 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폭넓게 다룬다. 물론 국가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통해 이들 지도자의 승리 전략도 살핀다.
제2부 '그들의 나라, 그들의 국민'은 세 정상이 구상한 국정 목표와 그 역사적 배경, 구체적 실천 방안을 차례로 풀어낸다.
국가마다 처한 상황과 국민의 요구가 달라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한 나라', 아베가 추구하는 '아름다운 나라', 문재인이 다짐하는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 또한 각기 다르다. 저자는 세 정상의 가치관과 포부가 어떻게 국정 목표로 나타났는지를 구체적 실천 방안과 함께 파헤친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던 미국이 '악덕 보안 업체'로 전락한 이유,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에 드리운 그늘, 검찰 개혁 등 문재인 정부의 불투명한 향방 등의 비판과 조언도 직설로 내놓는다.
이민자의 자손인 트럼프 대통령은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 사업가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를 돈방석에 앉혀준 트럼프 타워 건설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자본도 없이 주변을 철저히 이용하는 거래 기술로 사업을 성공시킨 것이다. 저자는 "기질적 사업가인 그가 초기에 벌인 사업 전개 방식에는 독특한 면이 있었는데 모든 사업을 무일푼으로 추진한다는 점이었다"면서 "돈 한푼 안 들여 계약을 성립시키고, 그 계약서를 바탕으로 은행 융자를 얻고, 그런 은행을 등에 업고 공무원을 설득해 지원을 얻어냈다"고 들춰낸다.
독단적 현실주의자이자 미국 우선주의자인 트럼프의 막말 정치 역시 치밀한 계산과 판단에서 이뤄졌다고 본다. 그의 선거 전략은 얼핏 '노이즈 마케팅'처럼 보이지만, 사회적 화두를 선점하거나 공략함으로써 상대를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하고 그 주도권을 쥐는 전략이라는 것. 개미귀신이 미리 파놓은 함정으로 개미를 유인해 잡아먹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해 필자는 트럼프의 이런 방식을 '개미귀신 전략'이라고 명명한다.
극우 세습 정치의 후계자인 아베 총리의 뒤에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가 있었다. 기시는 메이지 유신 세력의 후계자로 군국주의 일본을 앞장서 이끌었던 인물. 아베는 어린 시절부터 외조부의 사랑을 받았고, 집안의 후광으로 정치 성향도 그대로 물려받아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했다. 평화헌법(정식명칭 '일본국 헌법')을 개정해 자주국방이 가능한 군사 대국을 만들겠다는 목표 역시 외조부의 염원에서 비롯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배적 선민주의자인 아베의 보수주의란 곧 '기시 염원'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듯하다. 그가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것도 대단한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외조부의 염원을 실현하겠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말한다. 장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리더십을 모색하던 일본 국민은 극우 세력에서 답을 찾았고, 아베는 대담한 추진력으로 아베노믹스를 실행하는 한편, 이 성과와 지지를 토대로 기시의 염원을 현실화해 군국주의 시대로 회귀하려 한다는 얘기다.
가난한 피란민의 아들로 태어난 문 대통령은 고등학생 때부터 박정희의 3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대학생 때 유신헌법이 공포되자 그 반대 운동에도 적극 가담했고,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등 시국 사건과 노동 사건을 다수 맡았다. 이처럼 정치 성향을 분명히 드러내 왔던 그였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으로 살 뜻을 가졌던 건 아니었다.
저자는 "독자적 이타주의자인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 출범 때) 민정수석 제의를 받아들인 것을 정계 입문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결코 그의 순진한 생각을 용납하지 않았다"며 "그 자리에 앉는 순간, 그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고 들려준다. 박근혜 탄핵에 따른 장미 대선에서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다는 것이다.
"역사란 때론 강물처럼 흘러가 버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흘러간 강물이 바다에 모여 다시 수증기가 되고 하늘에서 내리듯이 역사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라 늘 우리 머리 위로 다시 떨어지는 현재다. 역사는 늘 현재형이다."
이같이 역설하는 저자는 고종이 흘러가 문재인이 돼 다시 떨어지고, 히로히토가 흘러가 아베가 돼 다시 떨어지고, 루스벨트가 흘러가 다시 트럼프가 돼 떨어지는 것이 곧 역사의 이치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늘의 고종은 어제의 문재인이고, 오늘의 히로히토는 어제의 아베이며, 오늘의 루스벨트는 어제의 트럼프"라고 덧붙인다.
김영사. 332쪽. 1만6천원.
트럼프, 아베, 문재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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