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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가야의 500년 공동묘지서 발견된 그릇받침이 40년만에 보물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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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0~81년 사이 복천동 11호고분에서 출토된 도기 거북장식 그릇받침과 목짧은 항아리. 문화재청은 이 유물을 보물(제 2059호)로 지정했다.|국립김해박물관 소장


‘말머리 장식 뿔잔(보물 제598호), 금동관(보물 제 1922호), 청동 칠두령(보물 제2019호), 철제갑옷 일괄(보물 제2020호)….’ 한국전쟁 당시 전국 피란민들의 판자집으로 가득찬 부산 복천동 구릉지역은 1969년 발굴 이후 기원후 2~7세기 사이 500년간 살았던 선조들의 공동묘지였다는 사실이 발굴결과 드러났다.

복천동고분은 곧 사적(제 273호)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서는 1970년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등에서 확인된 리톤(Rhyton·뿔잔)을 연상시키는 ‘말머리 장식 뿔잔’이 출토된데 이어 1980~81년에는 나뭇가지 장식, 즉 삼엽형 문양이 붙은 금동관과 당대 주술의 의미로 흔든 7개의 방울이 달린 가지방울 즉 칠두령,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철제갑옷 등이 쏟아졌다. 이 유물은 시차를 두고 차례차례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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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받침 한가운데 표면에 거북이 토우 한 마리를 부착시킨 것이 눈에 띈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 토우(土偶) 중 거북이 토우가 붙어있는 것은 이 도기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국립김해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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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80년 12월 부산대 박물관 발굴에서 출토된 또하나의 유물이 있었다. 바로 복천동 11호 고분 출토 ‘도기 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기대) 및 ‘목 짧은 항아리’(단경호)다. 도기는 유약을 바르고 1500도 이상의 고열에서 구워 표면이 반들거리고 유리질화한 기물을 일컫는다.



문화재청은 1500년 전인 5세기 복천동 고분에서 파손되지 않고 완벽한 한 짝으로 출토된 거북장식 가야도기및 목짧은 항아리 등을 보물(제 2059호)로 지정했다고 2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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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장식 원통형 그릇받침의 문양띠(왼쪽)과 40년전인 1980년 발굴당시 모습. 이 복천동 11호분에서는 금동관과 칠두령 등 보물급 유물들이 대거 확인되었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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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그릇받침과 목짧은 항아리는 도굴의 흔적이 없었던 11호분에서 확인됐다. 당시에는 금동관과 칠두령, 갑옷 등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1호분의 석실 서남쪽에서 출토된 그릇받침과 항아리는 출토지가 명확한 5세기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도기는 대부분 깨지거나 훼손된 사례가 많은데, 이 그릇받침과 항아리는 완전한 모습으로 발굴됐다. 따라서 이 시대 도기의 제작수준을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보존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 당당한 모습에 거북이 토우 한 마리를 부착시킨 중앙 기대가 눈에 띈다. 이와 같이 삼국시대 토우(土偶) 중 거북이 토우가 붙어있는 것은 이 도기가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이어 그릇받침과 항아리의 규모가 크고 형태가 조화롭고 안정적이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 표면이 자연스럽게 유약을 입혀 견고하게 제작됐다. 11단으로 나누어 단계별로 다양한 종류의 구멍을 뚫고 물결과 지그재그 등 가야도기에서 많이 쓰인 문양을 새겨 조형성이 우수한 점 등이 꼽힌다. 여러 면에서 가야도기의 특징과 삼국 시대 토기가 도기로 넘어가는 기술적 성과를 엿볼 수 있다. 신경철 부산대 명예교수는 “단일 고분군에서 이처럼 많은 유물(5점)이 보물로 지정된 것은 보기 드문 예”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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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무량사 오층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금동불상들. 발견지가 분명하고 보선상태가 양호해서 보물로 지정됐다.|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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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이밖에도 1971년 8월 무량사 오층석탑 해체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을 보물(제2060호)로 지정했다. 지정 불상들은 오층석탑에 봉안됐던 금동보살좌상(1구)과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3구) 등이다. 1구는 고려시대의 금동보살좌상이며, 3구는 조선 초기의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금동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 탑신(塔身)에서 발견된 금동보살좌상은 발견지가 분명한 고려 전기 보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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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제2061호)로 지정된 ‘관북여지도(關北輿地圖)’. 조선 시대 관북 지방인 함경도 마을과 군사적 요충지를 총 13면에 걸쳐 그린 지도집이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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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탑신에서 발견된 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선 초기의 뚜렷한 양식적 특징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 탑내 불상 봉안(奉安) 신앙 및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발견된 탑 봉안 아미타여래삼존상 중 구성과 도상이 가장 완전하고, 규모도 크며 상태도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금동불상 일괄’은 조성 배경을 알려 줄만한 기록과 명문이 없으나 발견지가 분명한 불상들이라는 점,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도 조각기법이 우수하다는 점, 당시 불교 신앙 형태의 일면을 밝혀준 준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예술적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보물(제2061호)로 지정된 ‘관북여지도(關北輿地圖)’는 조선 시대 관북 지방인 함경도 마을과 군사적 요충지를 총 13면에 걸쳐 그린 지도집이다. 지리적 내용과 표현방식 등으로 보아 1738년(영조 14년)~1753년(영조 31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19년(숙종 45년) 함경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이삼(1677~1735)의 지시로 제작된 함경도 지도집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작품이다. 1712년(숙종 38년) 조선과 청나라 정계(定界)를 계기로 함경도 지역 방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각 지역마다 한양으로부터의 거리, 호구수, 군사수, 역원(驛院·숙소의 일종) 등 관련정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지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봉수(烽燧) 사이의 연락 관계를 실선으로 직접 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다른 함경도 지도 뿐 아니라 기타 지방지도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참신하고 새로운 방식이다. 아울러 봉수 간의 거리를 수치로 제시하여 이용자의 편의를 극대화했다.

이기환 기자 lkh@kyunghyangc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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