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당 안 만들면 자체 후보 내야
의병정당과 경쟁 구도 될 수밖에
민주당 득표율 하락, 실속 없어
비례정당 만들자니 ‘범여’와 갈등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전날 비례민주당 창당 가능성에 대해 ’정통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의병이라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이라며 ’우리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임현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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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정당, 가짜정당.” “한국 정당사상 전무후무한 블랙코미디.”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시대착오적 망동.”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의 비례정당 창당에 쏟아낸 험구(險口)는 얼마든 더 있다. 하지만 이제 민주당 안팎에서도 비례정당 창당 얘기가 나온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야 한다”(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범보수연합에 원내 1당을 뺏길 수 없다는 민병대들이 비례정당을 만드는 건 상상할 수 있다”(민병두 의원) 등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도 “정통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병이라고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의 공식 입장은 아직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직 논의한 적이 없다”(24일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이다. 그러나 고심은 깊어간다.
한국당을 배제한 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행할 때부터 민주당은 비례정당 효과를 알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이 민주당 출처라며 공개한 자료엔 비례한국당(미래한국당의 당시 명칭)이 비례대표 전체 47석 중 30석을 가져간다고 돼 있다. 비례한국당이 없을 때 한국당 몫은 5~7석이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건 한국당이 설마 창당하겠느냐고 봐서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현실적으로 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이후 보수 진영이 통합했고 민주당과 양자 대결 구도도 만들어졌다. 여론 흐름도 달라졌다. 유권자들이 비례정당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조사도 나왔다. 2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비례대표 예상 득표율은 민주당 40%, 미래한국당 38%, 정의당 13%였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이 공개한 자료의 추정치(40%·35%·10%)보다 높았다. 이해찬 대표가 “우리 당이 비례대표에서 15석 이상 손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호남에서 20대 총선(28석 중 3석)보다 크게 선전한다고 해도 극복하기 만만치 않은 격차다. 통합당이 원내 1당이 되는 게 아니냐고 민주당이 우려하는 까닭이다.
관건은 미래한국당을 손가락질해온 민주당이 ‘의병’(또는 민병대)이란 표현에서 드러나듯, 비례정당이 아니면서 비례정당의 효과를 거두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다.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정준표 안동대 교수는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비례정당을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이지 어중간한 건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민주당이 비례정당을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하려면 자체 비례대표 후보를 내야 한다. 투표용지에 민주당과 ‘의병’의 이름이 병기된다는 의미다. ‘의병’이 민주당의 표를 상당 부분 이전받기 어려울뿐더러 민주당의 득표율 하락으로 민주당 자체 당선자 수도 줄게 된다. 민병두 의원은 ‘의병’이 10석 정도 가져갈 것이라고 보지만 정 교수는 상쇄 작용까지 감안, “효과는 몇 석 안 될 것”이라고 본다. 게다가 민주당과 ‘의병’의 관련성은 지속적 주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으로선 피곤한 데 비해 실리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예 비례정당을 창당하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미래한국당 창당 때) 나는 ‘미래민주당’도 만들어라, 선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늦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 와 비례정당을 만들면 정의당 등 ‘범여(汎與)’와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권 후반기의 민주당으로선 이래저래 곤혹스러운 선택지다.
고정애 정치에디터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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