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 ‘대군주보’(왼쪽)와 ‘효종어보’ |
조선 왕실을 상징하는 도장 두 점이 외국으로 무단 유출됐다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재미교포 이대수(84)씨에게 기증받은 조선 후기 국새 ‘대군주보’(大君主寶)와 ‘효종어보’(孝宗御寶)를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국새(國璽)는 국왕이 외교문서와 행정문서 등 공문서에 사용한 실무용 도장이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어보(御寶)는 왕과 왕비 덕을 기리거나 사후 업적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례용 도장이다.
조선시대에 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이 제작됐으며, 그중 73점은 소재가 불분명하다. 해방 이후 지난해까지 협상과 기증 등을 통해 미국에서 받은 국새와 어보는 약 15점이다.
높이 7.9㎝, 길이 12.7㎝, 무게 4.1㎏의 대군주보는 은으로 도금했으며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다. 서체는 글자 획을 여러 번 구부려서 쓴 전서체 구첩전(九疊篆)이다. 거북꼬리 아래에는 외국인 소장자의 이름으로 짐작되는 ‘W B. Tom’이라는 알파벳이 새겨져 있다. 기록을 근거로 추정한 제작 시기는 1882년이며, 사용 시기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까지로 파악된다.
효종어보는 높이 8.4㎝, 길이 12.6㎝, 무게 4.0㎏이며, 손잡이는 거북 모양이다. 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색깔은 금빛이다. 정수리에 임금 왕(王) 자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영조가 1740년 제17대 임금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만들었다. ‘선문장무 신성현인 명의정덕 대왕지보’(宣文章武 神聖顯仁 明義正德 大王之寶)라는 16글자를 새겨져 있으며, 서체는 대군주보와 마찬가지로 구첩전이다.
조선시대 인장 전문가인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은 본래 명과 청에서 받은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 국새를 썼으나, 고종은 ‘대군주보’의 제작을 지시했다”며 “기존 중국에서 받았던 국새와 달라진 점은 ‘인(印)’자가 천자만이 쓸 수 있는 ‘보(寶)’자로 대체됐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개화기 정세 변화에 맞춰 중국을 향한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 독립된 주권국가로 나아가려는 생각이 반영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 연구사는 효종어보에 대해서도 “1739년 제작한 중종비 단경왕후 금보와 비교하면 제작 기법과 글자 새김이 매우 유사하다”며 “18세기 중반 왕실문화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20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공개된다.
최승우 온라인 뉴스 기자 loonytuna@segye.com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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