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시중은행원 만큼 명퇴금 주고 내보내자"
정부, "다른 공공기관과 형평성 문제로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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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문제를 두고 노사 대표자와 정부 관계자가 19일 한자리에 모였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국책은행 명퇴 제도를 둘러싸고 노사정이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후 서울 중구의 모처에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주재로 국책은행 명퇴 관련한 비공개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엔 IBK기업은행,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 대표와 노조위원장,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관계자가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두 번째 회의다.
1차 회의에서 명퇴 제도 개선에 대한 운을 띄우는 자리였다면 이날 회의에선 국책은행 노사, 정부가 각자의 입장을 밝히고 의견을 청취했다.
비공개로 이뤄진 간담회에서 국책은행장들은 명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은행장들은 기은과 산은, 수은의 명퇴자가 늘어나면 임금 수준이 높은 공공기관의 신규채용도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책은행 노조의 한 관계자는 “3개 국책은행장과 노조의 의견이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국책은행 노사는 명퇴를 원하는 직원들이 ‘시중은행처럼’ 일정 금액의 명예퇴직금을 받고 회사를 떠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실상 현업에서 배제된 고임금 직원들이 명퇴를 택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공공기관의 명퇴금 산정 방식은 공무원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 기재부가 2014년 공공기관 임직원의 명퇴금은 원칙적으로 ‘공무원 명퇴금 산정 방식’에 따르도록 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근속하고 정년 1년 이상을 남겨둔 공공기관 직원이 대상으로, 퇴직까지 5년 남았다면 기존에 받던 월급의 45%를 기준 급여로 삼아 남은 개월 수의 절반을 곱해 명퇴금을 계산한다.
퇴사 직전 20∼36개월치 평균 임금에 자녀 학자금, 의료비, 재취업ㆍ전직 지원금 등을 추가 지급하는 시중은행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억대의 명퇴금을 쥐어주는 시중은행은 만 55세 이상 임금피크 대상자뿐 아니라 근속 15년 이상 직원도 준정년특별퇴직 등으로 희망퇴직을 신청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책은행에선 명퇴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원 입장에선 명퇴보다 임금이 줄더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임금피크제를 택하는 게 유리해서다.
전체 임직원이 약 1만3500명인 기업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 대상자는 지난해 12월 510명에서 2021년이 되면 984명, 2023년 1027명으로 늘어난다. 명퇴가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몇 년 만 지나면 직원 10명 가운데 1명이 현업에서 빠져 사실상 ‘유휴인력’이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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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 처음 참석한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명예퇴직 확대 필요성을 수차례 밝혀 왔다. 윤 행장은 취임식 전 노조와 ‘희망퇴직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다’는 노사선언문에 서명했고, 기자들에게도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고 우리가 경쟁하는 기관과의 차이가 있는 만큼 같은 위치에 있는 (국책)은행들과 공동 노력해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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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도 마찬가지다. 명퇴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2016년 내놓은 혁신방안대로 내년까지 인력을 10% 감축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노사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 관계자는 “임금피크 인력비율이 2018년 3.8%에서 2022년 6.7%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조직생산성 저하, 신규 채용 여력 축소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조직을 활성화하고 청년인력의 신규 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도 명퇴금 수준을 현실화한 특별 명퇴제 도입 필요성을 견지해 왔다.
키는 기재부가 쥐고 있다. 수은은 기재부 산하 기관이고, 기은과 산은은 금융위 산하 기관이지만 명퇴제를 개선하려면 사실상 기재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재원 마련과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기재부는 국책은행 명퇴제 개편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말 기준 공공기관은 340곳에 달한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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