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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만물상] 풍선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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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풍선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대 그리스다. 동물 방광으로 풍선을 만들어 공놀이를 한 기록이 있다. 요즘 흔히 보는 고무풍선은 근대 과학의 산물이다. 1824년 영국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가 두 장의 고무를 겹쳐 가장자리를 밀봉하고 수소를 주입해 하늘을 나는 풍선을 처음 만들었다. 1년 뒤 영국의 한 고무 생산업자가 이를 상품화해 놀이용 고무풍선을 팔았다. 그 뒤 풍선은 장난감뿐 아니라 장식용, 광고용, 의료용, 기상관측용처럼 용도가 계속 넓어졌다.

▶정책 부작용을 설명하는 데도 풍선이 쓰인다. 계기는 미국 닉슨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가장 약한 단계인 마리화나 흡연자까지 모조리 감옥에 보내고 주요 마약 공급 조직인 멕시코 갱단을 집중 단속했다. 그랬더니 감옥에 갔다 온 초범들이 갱단 조직원으로 바뀌고 마약 공급처가 콜롬비아 같은 다른 중남미 나라로 다변화됐다. 미국 마약 범죄를 눌렀더니 중남미 마약이 부풀어 오른 셈이다. 당시 이를 풍선 효과(Balloon effect)라는 신조어로 불렀다고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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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효과는 경제 용어로도 쓰이게 됐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특정 재화나 서비스 공급을 차단해도 수요가 있으면 어떤 경로로든 공급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과외 금지 조치는 비밀과외를 성행하게 만들고, 성매매특별법은 사창가는 없애지만 여러 변종 성매매를 부추겼다. 국가에서 어떤 특정 내용을 트집 잡아 책이나 음반 판매를 금지시키면 해적판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정부가 은행 대출을 억제하면 사채 시장이 커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정부가 풍선 효과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서울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부동산 대책을 열여덟 번이나 내놨지만, 수도권 아파트 값이 연쇄 폭등하는 부작용을 낳더니 서울에서 먼 곳으로 원심력을 나타낼 낌새마저 보이고 있다. 원래 부동산 대책은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오르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이를 예상하고 정교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고무풍선이 아무리 탄성이 좋아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계속 누르면 어느 순간 터진다. 우리나라 집값 버블은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 올랐다고 보는 전문가가 적잖다.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 금융 위기, 경제 위기로 옮아갈 수 있다. 앞선 대책이 무위로 드러나면 정부는 더 세게 풍선을 누르겠다는 엄포만 놓고 있다. 풍선 효과를 막을 수 없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에 집이 계속 공급된다는 믿음을 줌으로써 서서히 바람을 빼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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