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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철호 칼럼니스트의 눈] “윤석열이 맞고 추미애가 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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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장관의 4번 도발, 역풍만 초래

왜 검찰 모르면서 좋은 관행 깨나

“못 말리는 추미애, 윤 총장이 옳다”

추 장관, 코로나19에 더 집중해야



검찰 개혁인가 추미애의 도발인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또 윤석열 검찰총장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검찰 내 수사·기소 주체 분리’를 논의한다며 오는 21일 전국 검사장 회의를 소집했다. 장관이 주관하는 검사장 회의는 17년 만에 처음이다. 윤 총장은 이번 회의에 불참할 예정이다. 윤 총장이 정면 대결을 피하는 모양새이지만 심상치 않은 조짐이 감돌고 있다. 추 장관은 지난 11일 “검찰이 중요사건을 직접 수사해 기소하는 경우 중립성과 객관성을 잃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21일 회의는 이미 청와대와 조율을 마치고 수사·기소 분리 강행을 통보하는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이에 맞서 윤 총장은 13일 부산 강연을 통해 “직접 증거를 보고 심증을 정확하게 형성한 사람이 기소와 재판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와 기소는 한 덩어리가 돼야 한다며 추 장관의 주장을 맞받아친 것이다. 다시 한번 정면충돌로 치닫는 분위기다.

세 차례 정면충돌 … 이번이 4번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의 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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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장관은 취임 이후 한 달 보름 동안 윤 총장과 3차례 충돌했다. ▶검찰 인사 ▶청와대 최강욱 비서관 전격 기소 ▶울산 사건 공소장 비공개 등이 그것이다. 추 장관이 ‘검찰 개혁’을 내세워 먼저 싸움을 걸고 윤 총장은 수비에 치중하는 구도였다. 충돌 결과는 대개 추 장관이 치명상을 입는 것으로 끝났다. 문재인 정권을 향한 사회적 눈초리만 싸늘해졌다. 그럼에도 추 장관은 수사·기소 분리로 4번째 싸움을 걸고 있다.

지난 6일 추 장관은 대검 청사 8층의 검찰총장 집무실을 찾아가 윤 총장을 만났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은 원래 한 공간에 있지 않도록 배려하는 게 원칙이다. 서로 미묘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은 정부 외청의 수장 가운데 유일하게 장관급이다. 경찰청장·국세청장 등은 차관급이다. 따라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집무실에 가지 않는 것이 관례다. 법무부 장관이 주관하는 행사에도 대검차장 등을 내보낸다. 법무부 장관 취임식과 퇴임식 때 검찰총장이 예의상 장관 집무실을 찾아 인사하는 게 유일한 예외로 꼽힐 정도다. 그것도 차 한 잔만 나누고 돌아갈 뿐 공식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권과 예산편성권을 쥐고 검찰을 통제한다. 검찰의 폭주와 과도한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서다. 국회에도 검찰을 대표해 검찰총장 대신 법무부 장관이 출석한다. 대검 국정감사를 제외하면 검찰총장은 국회에 출석할 일이 없다. 이런 미묘한 관계 때문에 법무부 참모들과 대검 참모들은 장관과 총장이 되도록 같은 공간에 섞이거나 사진이 찍히지 않도록 미리 세심하게 교통정리를 해 왔다. 법무부 장관을 최고 수장으로 받들면서도 살아있는 권력까지 수사하는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과 검찰총장에 대한 예우인 것이다. 이런 관행을 추 장관이 연거푸 깨고 있다.

추 장관의 도발은 실패하고 역풍만 낳아

지난달 9일 검사장급 인사 때도 마찬가지다. 추 장관은 법무부 인사위원회 직전 윤 총장을 법무부로 소환했다. 여기에 윤 총장이 따르지 않자 “내가 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힘을 실어주었다. “수사권은 검찰에 있지만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와서 (인사)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검찰총장이 따라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청법 34조1항을 개정해 법무부 장관이 검찰 인사에 앞서 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한 것은 수사 외압을 막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2004년 1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은 누구보다 그 배경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진보신문들조차 “추 장관이 박상기 전 장관 때까지 지속해온 인사 관행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검찰 인사 초안을 만들면 장관이 총장에게 연락해 ‘제3의 장소’에서 만났다. 제일 큰 이유는 인사 보안 때문이다. 현 정부 초기에도 박상기 장관과 문무일 총장이 제3의 장소에서 만났고, 여기에 조국 민정수석까지 대부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검찰 인사의 파행은 역풍을 불렀다. 원래 대검 참모 인사는 검찰총장의 의견을 100% 반영해 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총장을 보좌해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번에는 윤 총장의 수족을 완전히 잘랐다. 윤 총장을 고립시켜 현 집권 세력을 향한 수사를 차단하는 목적 외에 다른 이유는 찾기 어렵다. 그러나 좌천된 검사들은 “마음이 편하다”며 담담히 유배를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영광의 상처로 여기며 버티는 분위기다. 거꾸로 친문 검사들이 유탄을 맞고 있다. 요직만 골라 다니는 이성윤 중앙지검장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조국 무혐의’를 주장했던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이 후배 검사들로부터 “너도 검사냐”는 모욕을 당했다. 인사로 검찰을 지배하기는커녕 친문 검사들이 조직에서 배척받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잘못된 사례 인용해 신뢰 갉아 먹어

열흘 간격으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달 23일 차장·부장 검사 인사 30분 전에 검찰은 조국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작성해준 혐의(업무방해)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했다. 이에 대해 추 장관은 “날치기 기소”라고 맹비난했고 최 비서관은 “검찰의 기소 쿠데타” “피의자 소환 통보를 못 받았다”고 우겼다. 하지만 피의자 소환장이 공개되면서 망신살만 뻗쳤다. 진보 진영은 꼬리를 내렸고 설날 연휴 민심만 나빠졌을 뿐이다.

한 전직 검찰총장은 이에 대해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가 검찰을 너무 모른다”며 “검찰은 나쁜 놈 잡아 기소하는 게 본질”이라고 말했다. 범죄혐의가 드러나고 증거가 있는데도 기소하지 않으면 검찰이 나중에 직무유기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권이 자주 바뀌고 비밀이 없는 시대다.

추 장관이 울산 사건 공소장 공개를 거부한 것도 악수다. 따지고 보면 추 장관은 자주 엉뚱한 ‘삑사리’를 내곤 했다. “미국도 제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그때 (공소장을) 공개한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기소 즉시 공소장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번에 수사·기소 분리를 위해 일본의 ‘총괄심사검찰관’ 제도를 거론했지만 잘못 인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대검의 인권수사자문관제보다 오히려 효율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추 장관이 정치판에 오래 있다 보니 유리한 느낌만 들면 어떤 사례든 일단 투척하고 보는 느낌이다.

추 장관의 무리수는 부작용만 낳았다. 민변과 참여연대까지 “인권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가 궁색하기 짝이 없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소장을 공개하라”고 비난했다. 여기에다 현실적으로 공소장 비공개는 불가능했다. 피고인만 13명에 이르고 공소장을 받아보는 변호인단이 줄잡아 50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언론에 흘러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추 장관의 비공개 조치가 친문 진영을 향한 정치적 구애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신차려 법무부 #힘내라 검찰’ 경고

눈치 빠른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 “윤석열 총장의 말이 옳다”며 추 장관의 독주를 비판했다. 검사장 회의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매끄럽게 풀어가야지 이렇게 사사건건 충돌하면 되겠느냐”고 힐난했다.

추 장관이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입만 열면 참사다. 이번 검사장 회의도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지 모를 일이다. 반면 윤 총장은 청와대와 추 장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오히려 몸집은 커지고 있다. 조리돌림 당하는 피해자에게 국민적 지지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벌써 ‘#민주당만 빼고’에 이어 ‘#정신차려 법무부 #힘내라 검찰’이 유행어가 될 조짐이다. ‘윤석열이 맞고 추미애가 틀리다’는 구도가 굳어져 가고 있다.

지금 추 장관이 해야할 일은 따로 있다. 바로 코로나19다. 출입국 관리 및 불법체류자 단속은 법무부 소관이다. 추 장관은 지난달 22일 설 연휴에 인천공항 현장을 점검했다. 중국인 첫 확진자가 발생했을 뿐 별 긴장이 없던 시기였다. 그 이후 법무부 조치는 전형적인 뒷북치기였다. 지난 2일에야 후베이성 주민의 입국을 차단하고 제주도 ‘무사증 제도’를 중단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중국 관광객이 제주를 다녀가고 입국 차단 청원이 66만명을 넘긴 뒤였다. 추 장관은 지금 윤 총장과 싸우거나 검찰에 칼을 대기보다 코로나19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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