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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서소문 포럼] 한국의 55년생, 일본의 47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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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에 노후 준비하는 과로 한국

5년 정권의 각개전투 인구 대책

금세기 최대의 정책 실패일 수도

중앙일보

오영환 지역전문기자·대구지사장


어느 나라나 베이비 붐 세대는 사회의 게임체인저다. 거대 청장년 인구는 발전의 원동력이다. 대량 생산·소비와 납세의 주역이다. 새 대중문화의 길잡이기도 하다. 두꺼운 청장년층은 인구의 덤이다. 하지만 저출산 사회에서 고령화하면 짐이다. 후세대에 연금과 의료·요양의 복지 부담을 몰고 온다. 1947~49년 800만 명이 난 일본의 단카이 세대(團塊·2018년 625만 명)는 대표적이다. 1955~63년 한국의 베이비 부머(727만 명)도 그에 못잖다. 올해 55년생 71만 명이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진입하면서 ‘2020년 문제’가 시작됐다.

중앙일보 신년기획 ‘55년생 어쩌다 할배’에 비친 그들 삶은 현대사의 파노라마다. 고도성장기의 일손으로 오늘의 한국을 떠받쳤다. 개개인의 노후(老後)는 십인십색이다. 연금이 얇고 수혜차도 커 인생 2막은 더 갈래갈래다. 55년생 국민연금 수급자는 절반이 안 되고, 1인당 월 평균액수는 52만원이다. 노후 없는 현역은 55년생의 뚜렷한 흐름이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만 4명 중 1명이다. 노후에 노후를 준비하는 과로(過勞) 인생은 우리의 한 단면이다. 과로 노인은 하류 노인으로 떨어지기에 십상이다. 나이 들어선 인생역전의 재간이 없다.

과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드러난다. 2018년 기준 고령 인구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최상위다. 36개국 중 65~69세는 47.6%로 2위, 70~74세는 35.3%로 1위다. 주로 생계비 때문이다. 빈곤율도 두드러진다. 부동산을 뺀 가처분소득 중윗값의 절반 미만으로 사는 고령 빈곤율이 43.8%로 1위다. OECD 평균은 13.5%다. 부동산을 가처분소득에 넣어도 고령 빈곤율은 31%다(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높은 빈곤율은 노후 양극화를 상징한다. 65세 이상 자살률이 OECD에서 압도적 1위인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2/18


고령화 속도도 유례가 없다. 2018년 65세 이상이 14.3%인 고령사회가 됐고, 7년만인 2025년 초고령사회(20.3%)로 진입한다. 일본(1995년→2005년)보다 3년이나 빠르다. 비대해진 고령 인구는 의료비의 블랙홀이다. 2018년 현재 기대 수명은 82.7세이고, 건강 수명은 64.4세다. 의료·요양 수요가 가팔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령화는 지방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부터는 도시권에 엄습한다. 부산시는 2022년, 서울시는 202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10년 후 베이비 부머가 후기 고령자(75세 이상)로 진입하면 도시권에 의료 대란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금 지방의 병원과 요양시설은 고령자로 넘쳐난다. 고령화 문제에서 오늘의 지방은 내일의 도시다. 한국의 2020년 문제는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2045년엔 고령 인구 비율이 37%로 일본(36.8%)을 앞지른다.

일본은 ‘2025년 문제’다. 단카이 세대가 5년 후 고스란히 후기 고령자가 되면서 가져올 의료·요양비 폭증에 경보음을 울리려는 용어다. 사회의 경각심은 대책의 모태다. 일본은 2025년 초·초고령 사회다. 추계 인구로 65세 이상이 약 3명 중 1명(30%), 75세 이상이 약 5명 중 1명(17.8%)이다. 일본의 생애 의료비는 75~79세 때 최고 많고, 요양 수요는 75세부터 급증한다. 2025년에 간호 인력(2016년 166만 명)은 최대 27만 명, 요양 인력(183만 명)은 55만 명이 더 필요하다고 일본 정부는 추산한다.

그래도 일본은 선진국이다. 복지 사다리를 일찍 구축했다. 고령층의 가처분 소득도 높다. 2015년 고령 인구 가구당 평균 자산은 5816만 엔(금융자산 1970만 엔)이었다. 정책 구상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연한 고령 인구 고용제, 고령 고소득자의 의료비 자부담 강화, 보육·교육비 부담 완화…. 고령기 편중 연금·의료비를 줄여 지속 가능한 사회로 가는 전(全)세대형 사회보장 시스템을 짜고 있다. ‘1억총활약사회’는 저출산·고령화, 인구 감소의 국난(國難)에 맞선 캐치프레이즈다.

인구는 나라의 근간이다. 국력과 국민 생활을 좌우한다. 우리의 초저출산과 고속 고령화, 눈덩이 복지비는 이제 눈앞의 도전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는 살아 있는가. 착착 진행돼온 과학의 영역에 대한 5년 정권의 각개전투는 금세기 한국 최대의 정책 실패일지 모른다. 정권을 뛰어넘는 장기 종합대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영환 지역전문기자·대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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