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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시론]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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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우선’…신중함 보인 미국

미지의 사태엔 보수적 대응해야

중앙일보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의무·홍보이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한국에서는 중증 질환이 아니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감염증 첫 환자가 퇴원하고 예상보다 확진자 수의 증가 추세가 둔화하자 낙관론이 빠르게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확진 환자들의 치료 경과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어디든 데리고 나가 뛰어놀게 해야 할 아이들을 집에서 품느라 지친 부모들과 이런저런 약속과 모임을 취소한 채 먹는 혼밥에 질린 사람들에게는 분명 반가운 소식이다.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전국을 뒤덮고 전 국민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낸 지 이제 한 달이 다 돼간다. 모두 지칠만한 시기다.

그런데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아직 이 바이러스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바이러스의 근원에 대해서도, 감염병의 병리적인 시작으로부터 완전한 회복까지의 생활사에 대해서도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중증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효과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최장 잠복기가 24일인지, 40일을 넘는 것인지 확실히 알지 못한다. 중국에서 수많은 환자가 발생했던 기간에 한국으로 입국한 사람 가운데 얼마나 많은 감염자가 있었을지도 알지 못한다.

미국의 질병통제센터(CDC)는 감염병과 관련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연간 10조원이 넘는 예산을 감염병 예방을 위해 사용한다. 직원만 1만5000명이 넘는 거대조직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의사이거나 관련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미국이 1월 31일부터 최근 2주간 중국 여행력이 있는 외국 국적자의 입국을 금지한 것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반하는 과도한 제한”이라며 비난하자 미국 CDC는 “이런 상황에서는 과학이 우선”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한 달 만에 벌어진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 극도의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홍콩에서는 같은 아파트의 다른 층에 사는 두 사람이 각각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자 보건 당국이 한밤중에 긴급회의를 열어 아파트 전체 주민을 대피시켰다. 아파트의 공기 파이프를 통해 공기 전파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체 없이 조치한 것이다.

답답할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미국과 홍콩의 공통점은 이 새로운 감염병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비록 코로나바이러스의 일반적 특성을 알고 있더라도 변종인 만큼, 미지의 영역에 대해 함부로 단정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나중에 보았을 때는 다소 과도했을지언정, 현 시점에서 정확히 알고 있는 만큼에만 근거해서 보수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원칙이다. 미국은 심지어 완쾌해 퇴원한 환자조차도 자택에 자가격리했다. 집요할 정도의 완벽주의다.

그에 비해 한국은 어떤가. 아직 몇 명의 퇴원환자가 나왔을 뿐이고 그나마도 이들 대부분 경증환자였는데 벌써 “별것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에서는 공기 전파 가능성이 계속 언급되고 환자가 계속 나온다. 일본의 크루즈선에서는 4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 보건 당국은 공기 전파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무증상 기간의 전염력, 2주가 넘는 잠복기 사례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 못하니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 바이러스의 위협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제아무리 무서운 감염병도 결국은 지나간다. 그래서 오히려 다 안다는 착각과 오만이야말로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후회와 함께 사라졌다가도 이때쯤이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의무·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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