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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기생충’ 아카데미 석권에…칸영화제 ‘이례적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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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지난 9일(미국 LA 현지시간)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기생충’이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후 일주일 간 한국은 물론 전 세계 미디어가 미친 듯 관련보도를 쏟아냈다. ‘사상 최초’ 타이틀이 붙은 시상이었기 때문이다. 와중에 별다른 관심을 못 받는, 그러나 의외로 의미심장한 상황이 존재한다. 바로 이 모든 ‘기생충’ 열풍의 시작, 칸국제영화제 측 반응이다.

칸영화제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기생충’은 델버트 맨의 ‘마티’와 빌리 와일더의 ‘잃어버린 주말’에 이어 황금종려상과 오스카 작품상을 석권한 역대 3번째 영화”라며 “친애하는 봉준호, 칸영화제 모든 스태프가 진심으로 브라보를 전한다”고 적었다. 이외에도 칸 측은 관련해 3개 트윗을 더 내보냈다. ‘기생충’이 영화역사상 가장 많은 상을 타간 영화가 됐다는 점, 심지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에 감독상을 건네준 스파이크 리가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이란 점까지 홍보했다.

칸영화제 측이 공식적으로 ‘아카데미상’을 이처럼 대놓고 언급하며 소감을 밝히는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간 아카데미상이란 아예 ‘없는 상’인양 높은 콧대를 자랑해온 역사가 길다. 나아가 그 결과에 대해 이런 식으로 자랑해온 적도 없다. ‘기생충’ 관련해 칸 측은 확실히 신기할 정도로 ‘자랑질’을 여기저기 늘어놓고 있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면,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칸영화제는 2000년대 들어 해가 거듭될수록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너무 지나칠 정도로 유럽영화 안배가 심해졌단 점도 그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0년 간, 칸은 20번의 황금종려상 중 무려 14번을 유럽영화에 안겨줬다. 70%다. 유럽영화가 ‘그 정도’로 대단했던 시절이었다곤 절대 볼 수 없는 데도 말이다. 그만큼 신뢰도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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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칸영화제도 늘 이랬던 건 아니다. 예컨대 1970년대만 해도 공동수상 포함 총 12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절반 가까운 5편이 미국영화였다. 사실상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노골적 유럽편향 분위기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1970년대 직전까지만 해도 유럽영화는 상업적 차원에서 할리우드와 세계를 양분하고 있었고, 비평적으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화예술의 메카’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유’가 있었다. 자신들 영향력으로 그간 잘 거론되지 않던 국가 영화들을 ‘띄워주는’ 역할도 종종 맡았다.

그러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할리우드가 전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고, 비평적 차원마저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비드 핀처 등 미국신예들과 왕가위, 키타노 다케시 등 아시아신예들이 세계적 화제를 독차지하면서, 칸도 점차 태도를 바꿔나갔다. 더 이상 ‘여유’ 부릴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이다. 말이 국제영화제지, 칸도 어디까지나 “유럽영화 발전을 위해” 설립된 영화제, 결국은 유럽서 개최되는 유럽영화제다. 일단은 ‘나부터 살기 위해’ 욕을 먹든 어떻든 2000년대 들어서 부턴 유럽영화 보호와 육성을 위해 철저한 ‘띄워주기’ 구도를 굳혔다.

이 같은 태도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다른 둘, 특히 베니스영화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베니스 측은 오히려 빗장을 풀고 ‘세계영화’를 받아들여 홍보해주는 장으로 변모했다. 같은 기준에서 베니스 측은 지난 20년 간 유럽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한 일이 단 4번뿐이었다. 심지어 한국영화도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최고상을 처음 타본 건 베니스에서였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다.

그러자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니는 할리우드 측에서도 점차 칸 대신 베니스로 아카데미상 레이스에 걸 맞는 ‘될성부른 영화’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신들 영화를 바람잡이처럼 불러만 놓고 정작 상 줄 땐 무시해버리는 칸에 질려버린 것이다. 베니스에선 모두가 주목받고, 또 수상의 영광도 다양하게 얻었다. 특히 지난 3년간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그대로 아카데미상으로도 직결됐다. 차례로 ‘셰이프 오브 워터’ ‘로마’ 그리고 ‘조커’가 황금사자상을 타갔다. 모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고, 그중 한 편은 수상도 했다. 화제성 자체가 차원이 달라지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베니스는 점차 화려해졌고, 칸은 초라해져갔다.

그러다 ‘기생충’이 칸영화제에서 터졌다. 곧바로 개최국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 히트작으로 거듭났다. 마침내 세계 최대 홍보탑, 아카데미상마저 석권했다. 그리고 이 모든 성공행진 원인점은 언제나 ‘칸 황금종려상’으로 지목됐다. 칸의 영향력을 과시할 최적의 사례가 탄생한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황금종려상 이후 최대 파급력을 보여줬단 얘기까지 나온다. 칸으로서도 어마어마한 전환점이 됐다. 그러니 그토록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닐 만한 것이다.

어찌됐건 칸영화제는 이제 ‘더 많은’ 한국영화를 원할 것이다. 1950~60년대 일본영화가 그랬듯, 그리고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중화권영화가 그랬듯, ‘지금’의 아시아영화 맹주는 이제 한국이다.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라, 아카데미상 역사를 새로 쓴 차원에서 현 시점 가장 ‘핫한’ 영화 제작국 위치에까지 올라섰다. 러브콜은 칸뿐 아니라 베니스, 베를린으로부터도 쏟아질 것이다.

물론 결국은 칸영화제도 ‘돌아설’ 것이다. 한국 등지 영화를 통해 도로 국제적 화제성과 영향력을 회복했단 판단이 서면, 애초 목표인 “유럽영화 부흥”을 위한 자세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자비에 돌란 같은 기괴한 케이스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만 그 전까지, 한국영화산업과 칸은 한동안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밀월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산업은 국제적 홍보 ‘지렛대’를 얻고, 칸은 그를 통해 영향력을 제고하는 관계. 그리고 한국엔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등 봉준호만큼의 수퍼스타로 올라설 수 있는 확장성 높은 영화작가들이 많이 남아있다. 절호의 시기를 놓치지 않고 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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