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위원회, 5·11연구위원회 자료 왜곡·은폐 정황 곳곳에서 발견
왜곡 세력 활동 자료 발굴, 조사 범위 확대도 숙제
국회 광주청문회가 진행됐고 5·18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됐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와 시대상에 따라 5·18 왜곡은 변주를 거듭하며 반복되고 있다.
새롭게 마련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에 '5·11연구위원회의 조직 경위·활동 사항·진실 왜곡 조작 의혹사건'이 규명과제로 담긴 것은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5·18 관련 진상조사는 '가짜와의 싸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돼 있어 진상규명에 어려움을 겪었다.
누가 어떤 진실을 감추려고 했는지 등 왜곡의 근원을 밝히고 바로잡는 것은 진상규명을 위한 첫 단추인 셈이다.
5ㆍ18 특조위 "1985년 '80위원회' 통해 사실왜곡 추정" (PG) |
◇ 5·18 진실 감춘 세력은 누구…드러난 용의자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18 항쟁 당시는 물론 진상규명 움직임과 목소리가 컸던 1988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은폐했다.
그중 1985년에 구성된 '80위원회'와 1988년 '5·11연구위원회'의 5·18 은폐와 왜곡 시도는 가장 필수적인 규명과제로 꼽힌다.
2017년 5·18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는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5·18에 참가한 전 부대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하던 중 '80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가 조직적으로 5·18 자료를 은폐, 왜곡한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1988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이 보안사가 청문회 대책 기구를 운용해 5·18의 진실을 왜곡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그 실체가 구체적인 증거로 드러났다.
공개된 전두환 정부 '80위원회' 자료 |
◇ 위장 명칭 '80위원회'…왜곡 홍보 대책 실행
1985년 전두환 정권은 5·18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에 대응하는 대책으로 안전기획부 주관하에 대책기구 '광주사태 진상규명위원회'를 조직했는데, 대책기구 설립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위장 명칭인 '80위원회'가 더 널리 알려져 있다.
80위원회의 활동목표는 ▲ 광주사태 백서 발간 ▲ 진압 작전 불가피성에 대한 홍보 대책 마련 등 두 가지였다.
국방부 특조위는 기무사 자료를 통해 80위원회가 만든 백서로 추정되는 50쪽 분량 보고서 본문은 발견했지만, 상황일지 관련자 명단, 쟁점별 일문일답이 담긴 부록은 누락된 상태였다.
다만 안기부 등 정부 기관이 관여해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언론을 통한 왜곡 홍보 대책이 실제로 실행됐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새롭게 발견된 자료에는 80위원회가 활동한 시기인 '1차 작성 1985년'이라는 메모가 발견되는 등 은폐나 왜곡이 80위원회 활동으로부터 시작됐음을 암시하는 정황도 나왔다.
조사결과 발표하는 이건리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
◇ 5·11연구위원회, 청문회 앞두고 왜곡·은폐
1988년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를 앞두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대응 논리를 주도적으로 작성한 곳이 '5·11연구위원회'다.
당시 노태우 정권은 청문회 대비 목적으로 국방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회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했는데, 5·11연구위원회는 산하 실무위원회였다.
군 자료 수집과 정리 작업을 맡은 5·11연구위원회는 군 자료의 은폐·왜곡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5·18 관련 단체들은 보고 있다.
2017년 특조위가 찾아낸 군 상황일지에 상세히 기술된 집단 발포 상황과 체험수기의 내용은 1988년 제출된 군 자료에는 누락돼 있었다.
특히 5·11연구위원회는 5·18과 관련된 장병들이 작성한 체험수기를 사전검토해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기도 했다.
군 자료를 '미공개' 대상으로 분류해 은폐하려 한 정황이 엿보이는 메모도 발견됐다.
80위원회의 조직도 |
◇ '왜곡의 전말 밝힐까'…과제 산적
군 자료의 상당수가 1985년 80위원회에서 검토·변경된 후, 1988년 5·11연구위원회를 통해 재차 왜곡된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전말은 아직 안갯속이다.
안기부가 80위원회를 주도했기 때문에 현 국정원에 관련 자료가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강제조사권이 없었던 국방부 특조위는 국정원으로부터 자료의 존안 여부를 확인받지 못했다.
80위원회가 만든 백서로 보이는 보고서의 일부 내용도 확인했지만, 전체 보고서는 조사하지 못했다.
80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에 참여한 관계자 45명의 명단은 구체적으로 드러났으나, 국방부 특조위는 조사 기간과 권한의 한계로 관련자들을 조사하지 못해 이 또한 과제로 남았다.
80위원회와 5·11연구위원회는 5·18 왜곡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1980년 당시부터 최근까지의 왜곡의 전말과 그 뿌리를 조사해 규명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국방부 특조위 조사관으로 활동한 정문영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은 "특별법에는 진상규명 과제로 5·11연구위원회만 언급돼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새롭게 출범한 진상조사위가 직권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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