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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권커니 잣거니 하는 미풍양속?…이젠 술 마실 때 ‘수작’ 부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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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식품 이야기

경향신문

흔히 누군가가 수상한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수작 부리지 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수작이란 우리의 술 문화에서 잔을 주고받음을 의미한다. ‘주법(酒法)’이란 술을 따르고 마시는 방법을 일컫는 표현으로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서양에서는 각자의 잔에 술을 스스로 따라 마시는 음주문화가 주를 이루며, 이를 자작이라고 한다.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일찍이 발달한 서양에 어울리는 음주법인 셈이다. 음주량이나 속도를 각자 조절할 수 있으며, 술잔은 교환하지 않는다. 타인이나 집단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과도한 음주를 피할 수 있다.

다음은 대작이다. 잔을 서로 맞대고 건배를 외치며 마시는 주법으로, 중국과 러시아 동구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술 문화이다. 중국 사람들은 여럿이 함께해도 각자의 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자기 잔을 상대편에게 권하는 일은 없다. 술을 가득 붓고 ‘건배’를 외치며 잔을 다 비운 뒤에는 빈 잔을 보여준다. 이때 상대가 술을 비울 때까지 기다린다. 각자 술을 따라 같이 마시며, 음주량은 조절할 수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인 셈이다.

술잔을 서로 주고받으며 마시는 음주문화를 수작(酬酌)이라고 한다. 수(酬)는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따라 주는 행위를 말하고, 그 답례로 손님이 주인에게 따르는 것을 일컬어 작(酢)이라고 한다. 수작은 주인과 손님 사이에 술을 권커니 잣거니 하며 정다운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잔을 돌려마시는 ‘순배(巡杯)’도 수작의 한 형태다. 이를 아우르는 수작은 한국 특유의 주법으로, 이와 같이 술잔을 주고받는 음주습관은 우리나라 말고는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는 드물다. 음주의 동기가 주로 개인의 내부보다는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 동기에 의해 술을 마시고 싶을 때에도 함께할 사람을 물색하여 술집과 같은 외부의 장소를 찾는다. 이런 술 문화에 의해 분위기에 휩쓸린 과음·폭음, 술이 약하거나 음주를 원치 않는데도 주위 사람들의 강권에 의한 음주도 더러 발생한다. 이처럼 음주량이나 음주 시간을 자의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 수작의 단점이다.

결과적으로 수작은 음주량을 늘리고 음주의 속도가 빨라지게 한다. 여러 사람과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술을 마시게 되고, 따라서 단위 시간당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이 많아진다.

한편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에 영향을 주면서 개인 위생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수작은 잔을 돌려 쓴다는 점에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고 간염, 감기, 바이러스 등 전염병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데다 자칫 과음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수작은 우리의 전통적인 미풍양속이기도 하나, 이제는 ‘수작’부리지 말아야 할 때다.

김재호 | 한국식품연구원 산업지원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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