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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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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러니 철학없는 보수 소리 듣지”···‘대통합신당’ 당명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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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형준(왼쪽부터), 정병국, 장기표, 문병호 통합신당준비위 공동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신당준비위 회의에 참석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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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신당준비위원회(통준위)가 10일 ‘대통합신당’을 신당의 이름으로 잠정 합의했을 때 보수 지지층에서는 “왜”라는 의문이 적지 않았다. 자유주의 같은 핵심 가치는 온데간데 없고, ‘통합’이란 결과만 덩그러니 남아서다.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당명”(초선의원)이라는 불만이 뒤따랐다. “4ㆍ15 총선 이후 전당대회에서 당명이 변경이 논의될 것”이라며 이미 2개월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통합은 그릇일 뿐 콘텐트가 될 수 없다는 걸 정치권 인사 대다수가 안다. 통합 산파들의 발언만 봐도 그렇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여기서 분열하면 자유주의도, 대한민국도 죽는다”(페이스북)고 했다. 박형준 위원장은 “저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10일 언론인터뷰)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통합은 다른 가치(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일종의 고백이다.

신당의 이름에서 ‘보수’ ‘자유’ 같은 단어가 빠진 실제 배경으로는 “현실과의 타협”이 지목된다. 자유당(1951~1960) 등 과거 집권 보수정당이 쓴 부정적 이미지가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당명에 '자유'를 넣는 것과 관련 통준위에 참가하는 한 인사는 "자유가 제1의 가치라는 데는 저도 동의한다"며 “다만 자유한국당의 'ㅈ'도 꺼내지 말라는 이들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 저변에는 “당명을 이런 식으로 정하면 보수 정당의 고질병인 ‘언어의 빈곤, 철학의 부재’가 더 악화할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들은 과거 한국당 계열 정당의 당명 변경사(史)에 주목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당 계열 정당은 민주자유당(1990~1995)을 빼놓고는 신한국당ㆍ한나라당ㆍ새누리당 등 당명에 가치가 담긴 적이 없다. ‘철학의 빈곤’이란 고질병이 우연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당은 ‘민주’라는 단어를 수십년간 지켜왔다. 한국당보다 두 배 가까이 이름이 자주 바뀌었지만 ‘민주’가 빠진 건 새정치국민회의(1995~2000), 열린우리당(2003~2007)이 전부였다. ‘통합’을 앞세웠던 대통합민주신당(2007~2008), 민주통합당(2011~2013) 역시 ‘민주’는 살려뒀다. 이는 민주당이 ‘민주주의 세력’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가치나 이념이 빠진 정당은 정치 파벌(faction)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주의ㆍ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라는 정당의 정의는, 정당의 존재 이유인 ‘집권’마저도 이상을 실현할 수단으로 지목하고 있어서다. 이념 지향이 누락된 당명을 두고 ‘묻지마 통합’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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