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업률 및 근원PCE 물가 상승률. /자료=한국은행 |
역대 최장기간 경기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이 '저물가'로 고민하고 있다. 경기가 개선되고, 실업률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오른다던 물가가 꿈쩍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 방정식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분석부터, 온라인 거래 확산으로 인한 가격 경쟁 심화, 정부 복지정책 영향력 확대 등 다양한 설명이 뒤따르고 있다.
9일 한국은행 '해외경제포커스:미국의 저인플레이션 관련 최근 논의 및 시사점' 보고서는 "고용에 대한 물가의 반응 정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의 기울기가 1980~90년대 이후 빠르게 평탄화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필립스 곡선은 임금상승률(물가)과 실업률 사이의 반비례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요국 통화정책의 제1원칙 역할을 해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2018년 2000년대 들어 필립스 곡선 기울기가 0에 근접한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추정했다. 고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실업률은 2010년 9%대 후반에서 줄곧 떨어져 지난해 말 3%대 중반을 나타냈다. 하지만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음식·에너지 제외)는 2010년 1.4%에서 2019년 1.6%로 큰 변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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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케어 등 특이요인 영향력 확대…한국 상황과 유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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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기변동과 상관없는 특이요인에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미국의 근원PCE물가를 경기민감물가와 경기비민감물가로 나눠보면 물가 상승률에 대한 경기민감물가 기여도는 금융위기 이전 평균과 비슷하지만 비민감물가 기여도는 상당폭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근원물가에 대한 기여도 분석을 살펴보면 경기민감 근원PCE물가는 2002~2007년 평균 1.1%포인트에서 2019년 6월 1.1%포인트로 비슷했다. 반면 경기비민감 근원PCE물가는 2002~2007년 평균 0.9%포인트였지만, 2019년 6월 0.5%포인트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경기비민감 인플레이션의 약화는 의료서비스 물가 상승세가 정책 변경으로 크게 둔화된 데 주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가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등 공적 의료보험 프로그램, 의약품 가격 인상 억제 정책을 도입하면서 의료서비스 물가가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 정부가 의료보험 정책을 변경하면서 2015년 근원PCE물가를 0.4%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정부는 최근 국내 근원물가 상승률이 2016년 1.9%에서 지난해 0.7%로 하락한 데 대해 "무상교육, 건보적용 확대 등 복지제도 확충 등에 따른 하락요인이 0.9%포인트로 대부분이며, 수요측 요인은 0.1~0.2%포인트 내외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근 근원물가 상승세 둔화는 복지제도 확대로 가계실질부담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평가했다. 복지제도 확충이 일단락되는 2022~2023년 이후에는 특이요인에 의한 물가하락 압력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밖에 미국 통화당국의 정책 수행 결과 경제주체들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물가안정목표(2%) 근처에서 안착됐다는 점, 온라인 상거래 확산에 따른 가격 경쟁 심화, 미국 노동부문의 임금 교섭력 약화 등도 미국의 저물가 상황을 설명한다.
보고서는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은 경기의 물가 영향력 약화, 특이요인의 영향력 확대를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이 확대됐음을 시사한다"며 "물가동학의 구조적인 변화와 미시정책 변경 등 특이요인의 파급효과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물가전망에 유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고은 기자 dorem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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