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초인 1월 3일 황 대표는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황 대표가 희생을 각오했다”는 여론도 지배적이었다. 황 대표의 험지로는 종로가 1순위로 부상했다. 이낙연-황교안의 종로 빅매치도 초읽기에 들어가는 듯싶었다.
이낙연 전 총리는 기선을 뺏기지 않겠다는 듯, 지난달 23일 종로 출마를 공식화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무려 34일째 오리무중이다. 이제는 "황 대표의 ‘눈치 보기’가 이번 총선의 한국당 최대 악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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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 묻힌 물갈이 전략
한국당은 총선 전략으로 ‘희생을 통한 혁신’을 내세웠다. 당 간판들의 희생을 발판삼아 ‘문재인 심판론’에 올라탄다는 전략이었다. ‘TK 물갈이론’과 ‘수도권 중진 차출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황 대표가 갈팡질팡하자 "험지에 출마하라"는 당의 권고를 중진들은 무시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6일 페이스북에 “현직 대표는 꽃신 신겨 양지로 보내고, 전직 대표는 짚신 신겨 사지로 보낸다”고 꼬집었고, 김태호 전 경남지사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 "지금 김태호가 떠받들어야 할 민심은, 바로 고향의 민심"이라고 했다.
물갈이 1순위로 지목된 TK(대구ㆍ경북) 의원들은 “황 대표는 종로를 피하면서 왜 TK 희생만 강요하냐”고 반발했다. 경북 안동이 지역구인 김광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TK가 봉이냐는 말이 지역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다”고 했다. 황 대표가 참석한 공식 석상에서 처음 나온 ‘TK 반기’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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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줄도 꼬였다. 한국당은 당초 1월 말까지는 공천 문제를 마무리짓고 진용을 짠다는 구상이었다. 한 공관위원은 “한창 총선 전략을 짜고, 후보를 지원할 시점인데, 다들 황 대표의 출마지에만 매달려 있다”며 “벌써부터 종로 바닥을 휘젓고 다니는 이낙연 전 총리의 모습과 대비된다”고 했다. 한국당은 이날 의원총회를 열고 새 당명을 정하려 했지만 이도 무산됐다.
만약 황 대표의 종로행이 불발로 끝나면 향후 컷오프(공천배제) 등 공천 파동 충격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형오(가운데)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이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천관리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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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 프레임으로 이미지 타격
황 대표를 겨냥한 여당의 ‘겁쟁이 프레임’은 황 대표와 한국당 양측에 짐이 되고 있다. 한 서울 지역 의원은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장군이 발을 빼면 남은 병사들은 어떡하라는 거냐”고 꼬집었다.
황 대표의 대권 가도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인 반면, 이 전 총리의 차기 대선 지지율은 강보합세다. 황 대표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밀린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
새보수당과의 통합 논의도 덜컹거리고 있다. 통합이란 결국 각 정당이 공천 등을 놓고 얼마나 양보하느냐의 문제다. 새보수당 의원은 “‘다 내려놓을테니 통합하자’는 황 대표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도보수 진영을 아우르려는 통합신당준비위원회(통준위)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첫 회의를 열고 창당 작업에 착수했지만, 정작 새보수당은 빠졌다.
종로에 아예 유승민 새보수당 의원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이날 제기됐다. 권성주 새보수당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종로에서 이낙연 전 총리를 못 막으면 이낙연 정권 (등장을) 막기 어렵다. 2020년 종로는 좌파정권 연장의 심장"이라며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중도 보수세력 결집시켜 이길 수 있다. 바로 유승민"이라고 적었다. 이에 한국당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단히 환영할 만한 제안”이라고 반겼다.
서울 종로 출마를 공식화 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문동의 한 아파트에 마련한 전셋집으로 이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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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가 머뭇거리자 민주당은 역공을 펼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황 대표에게 “신사적 경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 대표가 종로 이외 몇군데를 대체 출마지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에선 “뜨겁게 대접해드리겠다”(신경민, 영등포을) "종로전선에서 후퇴하고, 용산 고지에 오르려는 황교안 일병의 용산 출마를 환영한다"(권혁기, 용산) 등 조롱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 공관위는 7일 열린다. 이날 황 대표의 거취를 결정짓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황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통합을 선언하며 ‘동반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손국희ㆍ이가람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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