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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동물에서 온 바이러스가 인간을 쩔쩔매게 만들었다, ‘인수공통전염병’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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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사진·경향신문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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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중국인 여성으로, 화난시장을 포함해 우한시 전통시장을 방문하거나 야생동물을 만진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 20일 국내에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첫 확진환자가 나왔습니다.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35세 여성이었죠.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환자의 감염경로를 추적하면서 환자가 최근에 야생동물을 만진 적이 있는지 확인했죠. 환자를 감염시킨 대상이 ‘동물’인지, ‘사람인지’를 조사한 것입니다.

중국 연구자들은 우한 폐렴 바이러스가 ‘박쥐’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22일 중국과학원 상하이파스퇴르연구소와 군사의학연구원 연구자들은 전날 학술지 ‘중국과학: 생명과학’에 발표한 논문에서 “우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자연숙주는 박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죠.

바이러스가 ‘뱀’으로부터 왔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23일 과학 정보포털 ‘유레카 얼러트’(EurekaAlert)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대, 광시대, 닝보대 의료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의 숙주로 뱀이 유력하다는 결론을 담은 논문을 국제학술지 바이러스학저널(JMV)에 게재했습니다.

동물과 사람간에 서로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하여 발생되는 감염병을 ‘인수공통전염병’ 혹은 ‘인수공통감염병’이라고 합니다.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에볼라 등의 감염병 숙주는 박쥐로 알려져있죠. 박쥐 뿐 아니라 개·고양이·토끼·새·물고기·말·사슴·소·염소·박쥐·낙타 등 다양한 동물이 숙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르스, 사스 외에도 조류독감,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용혈요독증후군(일명 ‘햄버거병’) 등 최근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감염병들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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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마스크를 쓴 여행객들이 탑승 수속을 준비하고 있다.사진·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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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으로 다 막기엔 너무 많은 인수공통감염병

인간은 모든 질병을 싫어하지만, 유독 인수공통감염병은 더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겨울철마다 유행하는 독감(인플루엔자)의 위력이 상당한데도, 독감보다는 메르스나 사스가 유행한다고 하면 더 큰 뉴스가 되죠. 미 질병관리본부(CDC)는 2017~2018년 겨울 독감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90만명에 육박하며, 사망자는 8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A형(H3N2) 독감은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인수공통감염병은 ‘백신’을 만들어 대비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한때 인간은 백신을 만들어서 천연두나 소아마비를 몰아낸 역사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감염병은 항생제를 개발하고 예방접종 기술을 발달시키면 없어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됐죠.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1960년대까지 각종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이 급속도로 감소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백신을 만들어서 대항할 수 있던 이유는 그 병원체들이 인간의 몸 밖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병원체이기에, 백신을 이용해서 사람이 면역을 획득하면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후 새롭게 발견된 주요 신종감염병만 30개가 넘을 정도로 계속해서 새로운 감염병이 생겨났는데, 이중 상당수가 인수공통감염병이었습니다.

인수공통감염병은 모든 동물 숙주를 멸종시키지 않는 한 근절시킬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숙주를 바꿔가면서 살아남기 때문에 박멸이 어렵습니다. 또한 병원체의 종류가 RNA바이러스일 경우 쉽게 돌연변이가 일어납니다. 즉, 단 하나의 바이러스에 맞춘 백신을 개발하기가 어렵죠. ‘우한 폐렴’의 원인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 역시 박쥐 유래 사스 유사 코로나바이러스와 상동성(유전자가 유사한 정도)이 89.1%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대비가 어렵다는 점 때문에 1980년대부터 신종 감염병 문제가 공중보건의 매우 주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각 나라에서는 이에 대비한 방역 체계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현대에 인수공통감염병이 더 기승 부리는 이유는?

인간은 과거부터 동물과 함께 살았는데, 인수공통감염병 문제가 현대에 이르러서 더 두드러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의 변화가 생겼고, 실제 발생했을 때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천병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미국의학원의 신종 감염병 발생요인을 참고해 정리한 ‘신종 감염병이 최근 대두되는 요인들’을 봅시다. 인구증가 및 인구구조의 변화, 가축의 대량생산체계, 인간 행태의 변화, 동식물을 포함한 교역의 증대, 기후변화 등이네요.(

‘건강보험심사평가원_정책동향 5호(2015년)’에 실린 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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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감염병이 최근 대두되는 요인들.자료·‘건강보험심사평가원_정책동향 5호(2015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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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인구수는 2000년에는 약 61억명 정도였으나 2050년에는 약 94억~112억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산됩니다.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도시의 인구밀도도 증가합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인구가 늘어나는데, 이는 만성질환자나 면역저하자가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신종 감염병이 나타나면 대유행하기 좋은 환경이 된 것입니다.

인구가 늘면서 육식의 소비도 증가합니다. 가축이 대규모로 밀집된 가금류 농장이나 돼지농장은 새로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출몰하기 매우 좋은 환경입니다.

기후변화 역시 신종 감염병의 출현과 매우 관계가 깊습니다. 강수의 기온이 증가하면 질병을 매개하는 모기와 진드기의 서식환경이 바뀝니다. 바다의 온도와 염분이 변하면 독성세균과 독소의 증가가 초래되죠.

천 교수는 이같은 요인들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서 신종 감염병은 현대화가 진행되더라도 그 출현 기회나 영향이 감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변화는 신종 감염병의 출현을 더 촉진하고, 유행을 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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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인천국제공항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에 대비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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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대응이 중요

강력한 백신을 만들어서 모든 신종 인수공통감염병을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하죠. 유행 초기에 발견해서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대응책입니다. 각 나라는 신종 감염병 감시체계를 만들고, 전파력이 강한 감염병에 대해서는 국가 간에 정보를 공유합니다.

‘우한 폐렴’의 경우에도, 아직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은 나라들까지도 고려해서 대응 전략을 세웁니다. WHO(세계보건기구)는 ‘우한 폐렴’을 두고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할지 두 차례 긴급위원회를 열었습니다. WHO 회원국 194개는 이처럼 세계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정보를 나누고, 함께 대응책을 논의합니다.

한국도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초기대응체계를 정비했죠. 공항 검역단계를 강화하고, 유행 중인 신종 감염병으로 의심되는 경우에는 병원에 진료 차 방문하는 단계에서부터 일반 환자들과 분리돼 진료를 받는 선별진료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했죠. 또 신종 감염병 확진자와 접촉자, 조사대상 유증상자(환자와 접촉하거나 유행지역을 방문한 후 증상을 보여, 격리 후 검사를 시행해야하는 대상) 등의 기준을 명확히 해 지역사회 전파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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