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살아보니 좋더라” 쫌 앞서가는 가족과의 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30대에서 60대, 1인 가구에서 3대 가구까지 10가구 27명 모여 살아



경향신문

공동체주택 ‘여백’ 입주민들이 1월 14일 경기 고양시 여백에서 티타임을 마친 뒤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노도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집이 있어도 걱정, 없으면 더 걱정인 세상. 치솟은 집값은 1인 가구는 물론 중산층마저 집값의 노예 또는 전세 난민이 되게 했다. 함께 사는 법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관계가 단절된 도시의 집은 다양한 갈등의 장이 됐다. 수년 전부터 ‘공동체주택’이 하나의 대안으로 거론됐다. 독립된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하고, 공동체 규약을 마련해 입주자들이 소통하고 공동체 활동을 하는 주거 형태다. “그게 잘 되겠어?” 의문은 여전하다. ‘따로 또 같이’ 산 지 4년차인 공동체주택 ‘여백’ 식구들에게 물었다. “잘살고 있나요?”

졸졸 흐르는 시내와 북한산을 곁에 둔 경기 고양의 천년 고찰 흥국사 입구. 이곳에 두 동짜리 공동체주택 ‘여백’이 있다. 1월 14일 저녁 ‘파란여백’ 2층 김수동(58)·정은수(51)씨 부부네 집을 찾았다. 부부는 옆집에서 구해온 유자차를 내줬다. 이웃들이 하나둘 모였다. 다들 ‘하얀여백’에 사는 정선애씨(52)가 가져온 해바라기씨를 까먹기 바빴다. 부부의 옛 직장 동료도 티타임에 함께했다. 퇴직 후 전기기술자 ‘수리아재’로 변신한 김일수씨가 여백에 놀러왔다가 다섯 집의 전기조명을 점검해줬다. 방문 기념 ‘재능기부’다. 일반 주택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다.

여백에는 30대에서 60대, 1인 가구에서 3대 가구에 이르기까지 10가구 27명이 모여 산다. 4층짜리 주택 2개 동에 5가구씩 있다. 세대 구성원까지 넓혀보면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2015년 4월 주택협동조합 하우징쿱의 공동체주택 입주자 모집을 통해 연을 맺었고, 2016년 8월 입주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다세대주택이지만 면면은 다르다. ‘방 3개, 화장실 2개’의 일률적 공간이 아니라 각자 원하는 평수·구조로 다르게 지었다. 커뮤니티실은 하얀여백 4층에 자리 잡았다. 입주자가 동시에 건축주가 되기 때문에 2억~3억원으로 자신만의 집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쫌 앞서가는 가족’

김수동씨는 자칭 ‘공동체 주거 전도사’다. 노후 주거의 대안으로 공동체를 강조하는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다. 시민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기금으로 청년주택 전세보증금을 지원하는 ‘터무늬 있는 집’ 프로젝트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는 여백 식구들을 ‘쫌 앞서가는 가족’이라고 표현한다.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도 함께 어울리며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거죠.”

이현옥씨(60)는 소아마비 장애인인 남편의 몸에 맞는 집을 짓고 싶어서 여백에 왔다. 정선애씨는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된 서울 성미산마을 인근에 살면서 공동체주택 입주를 꿈꿔왔다. ‘촌장’으로 통하는 민병권(67)·이선(67)씨 부부는 삭막한 아파트의 삶이 지겨웠다고 한다. “예전에는 반상회도 하고 옆집에 가서 차도 마시고 그랬는데, 이제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겠고 너무 건조하고 싫증 나고 재미가 없었어요. 나이 들면 공동체라는 걸 만들어서 같이 살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특별해졌다기보다는 옛날과 조금 비슷해진 것 같아요.”, “사라진 골목문화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여백에서 강제로 해야 하는 건 없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밥상모임’을 한다. 각 세대가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온다. 이선씨는 “신기한 건 밥상모임에 네 집만 모여도 ‘김이 빠진다’, ‘재미없다’는 느낌이 없었고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텃밭과 화단을 가꾸기도 한다. 1년에 두 번 쓸 만한 물건을 나누는 ‘나눔장터’도 연다.

소통은 단체 채팅방에서 수시로 이뤄진다. 오밤중에 “막걸리나 맥주 있으신 분?”이라는 메시지가 뜬 적도 있다. 곧 “OOO님이 한 병 주셨어요^^”라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시골에서 먹거리가 올라오면 건물 현관에 잔뜩 놓는다. 그리고는 메시지로 가져다 먹으라고 알린다. 몸이 너무 아프다는 주민의 메시지에 다른 주민들이 함께 도왔던 기억도 남아 있다. 정은수씨가 소소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지난번에 어느 분이 출장길에 여권을 놓고 가서 그 집 문 따고 들어가 사진을 찍어 보내준 적도 있어요. 한 번은 어느 집에 초기 치매인 어머니가 와 계셨는데, 전화를 계속 안 받으신다고 해서 우리 어머님이 올라가보시기도 했죠.”

경향신문

공동체주택 ‘여백’ 전경. / 여백주택협동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함께 살기, 마음먹기에 달렸다

결국 공동체주택이 추구하는 건 ‘함께 살자’는 것이다. 여백 입주민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도 중요하게 여긴다. 집 짓기 전부터 토박이 주민들과 얼굴을 트고 지냈다. 주민들은 입주 날 환영 현수막을 걸어주기도 했다. 여백 식구들은 푸짐한 마을잔치를 열어 고마움을 전했다. 종종 “원래 우리 동네 살던 사람들 같다”는 말을 듣는다. 민병권씨는 “우리 각자 나름대로 ‘달란트’가 있다. 마을회관 등에서 어르신들 모시고 재능기부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주택에 관심 갖는 이들은 많아졌다. 대다수는 감당하기 힘든 이웃을 만나면 어쩌느냐고 걱정한다. 김수동씨는 “남이 어떨까 걱정하는 것보다 스스로 좋은 이웃이 되면 충분하다”고 했다. 민씨도 “부부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맞춰가지 않으면 깨지지 않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아파트 살 때처럼 자기 위주로 살면 깨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여백 사람들은 살면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갈등을 함께 풀어간다고 했다.

공동체주택에 대한 정확한 이해만큼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현재 주택법은 공동체주택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다세대주택으로 본다. 함께 쓰는 커뮤니티 공간을 제대로 반영하기 힘든 구조다. 여백도 1층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쓰고 싶었지만 지자체가 허가하지 않았다. ‘공동체주택 활성화 지원 조례’가 있는 서울 이외에는 대출 등 지원도 부실하다.

“저 사람들이나 가능하지 아무나 되겠어?” 많은 의문이 떠다닌다. 여백 사람들은 말한다. “생각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요. 아무 생각 없는 옆사람을 설득하긴 어려워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이현옥씨는 “살면 살수록 더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이선씨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지는 스타일이 아니고 구들장처럼 뜨뜻한 사람들이라 참 잘 만났다 생각한다”고 했다. 이 말은 곧 ‘잘살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