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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녹아내리는 노동]‘21세기 자본’ 데이터…생산은 우리 모두가, 이윤은 기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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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경향신문

그래픽 | 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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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을 취재할 당시 기자는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민주당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관련 글과 동영상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관련 콘텐츠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샌더스와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집 주변에서 열리는 유세 일정과 지지자 모임 정보도 속속 올라왔다. ‘미국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줄은 알았지만 샌더스 열풍이 이렇게도 컸던가’라고 의미 부여를 하며 현장을 찾아다녔다. 구글 맵에 유세 장소를 찍자 소요시간과 교통편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 경우 구글은 숙박업소 추천도 해줬다. 샌더스 관련 취재를 더 많이 하게 됐고, 기사도 많이 썼다. 개인 비서나 조수가 없는 ‘1인 워싱턴지국장’으로서 페이스북과 구글이 고맙게 여겨지기도 했다.

■ 데이터는 ‘21세기 자본 또는 석유’

IT 기업들, 이용자의 클릭·검색·‘좋아요’ 누르는 행위 데이터로 축적…

새 서비스 개발·타깃 광고 유치 등 수입 올려


페이스북은 왜 특정 정치인에 대한 ‘나의 관심’에 부응했을까. 구글은 왜 내가 여행 계획 짜는 일을 도와줬을까. 답은 내가 가진 ‘데이터의 가치’에 있었다.

디지털 기업들은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취향, 성향, 행동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데이터를 쌓는다. 그렇게 쌓은 데이터를 가공해 새 서비스를 개발하는 한편 유료화된 서비스를 만들기도 한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깃 광고를 유치해 부수적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그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의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데도 이용된다. 데이터를 다른 기업에 팔기도 한다. 이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2018년 미 의회에 출석해 이용자들 개인정보 유출에 사과하면서 분명해졌다.

이렇듯 데이터의 수익 목적 활용은 무궁무진하며, 그 가치는 이용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플랫폼기업들은 일찌감치 그 가치를 이해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온 반면 개별 이용자들은 잘 모른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 대가로 기꺼이 데이터를 넘겨줘야 하겠거니 생각한다.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의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지난해 말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달러(4조8000억원)에 팔린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이 기업의 평가가치에 놀랐다. 국내 코스닥 상장사 시가총액 기준 2위에 해당하고, 비슷한 시기 매각된 아시아나항공 가치의 두 배에 가깝다. 배민이 비행기(화물기 포함)를 110여대 보유한 대형 항공사보다 더 큰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직원수 5명 기업이 9년 사이 1000명 직원을 가진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긴 했어도, 그 정도로 큰 가치를 가졌으리라 믿기는 어려웠다. 그 이유 역시 배민이 보유한 데이터에 있다. 월 이용자 1000만명을 넘긴 배민이 보유하고 있고, 향후 보유하게 될 데이터는 빠른 속도로 커져가는 한국 배달시장을 석권하는 데 필수적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017년 5월 일찌감치 세계에서 가장 값진 자원은 더 이상 석유가 아니라 ‘데이터’라고 선언한 데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데이터는 21세기 자본” “데이터는 새로운 석유”라는 명명은 이제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정부 관리들 입에서도 상투어가 됐다.

■ 누가 데이터를 생산하나

인터넷 이용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하는 활동은 ‘노동’…

인식 못하는 사이 기업의 ‘기술 농노’로 데이터 생산 노동에 참여하게 돼


석유가 석유기업이 갑자기 만들어낸 것이 아니듯, 데이터도 플랫폼기업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용자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클릭하고, 검색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행위 하나하나가 데이터가 된다. 스마트폰을 지니고 조깅을 하거나, 지인과 안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공유 서비스로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거나, 플랫폼으로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거의 모든 일상적 활동이 데이터가 된다.

전자제품들끼리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이 구현되면서 데이터 수집 폭은 더 넓어졌다.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은 AI 고도화와 관계 있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훈련되고 학습한다. 어느 순간 누군가의 취향을 그 이용자의 주변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게 집어낼 정도로 똑똑해진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제공한 데이터로 고도화된 AI는 많은 영역에서 우리 노동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데이터 생산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부지불식간에 하는 활동을 ‘노동’으로 보자는 견해가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글렌 웨일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 수석연구원과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교수는 저서 <래디컬 마켓>을 통해 ‘모든 이용자는 디지털 노동자’라고 단언했다. 이용자의 데이터 생산은 ‘여성의 가사노동’ ‘흑인의 미국 문화에 대한 공헌’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온,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기술기업들이 ‘디지털 공유지’에서 가장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용자들은 자신이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술 농노’로 데이터 생산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앞서 ‘녹아내리는 노동’ 사례로 크라우드웍스의 AI 학습용 데이터 수집을 위한 일감단위 단순노동 사례를 전한 바 있다(경향신문 1월1일자 2·4면 참고). 포장지에 쓰인 글자 타이핑, 자기 팔꿈치 사진 찍어 올리기…. ‘이런 것도 일일까’ 싶을 정도로 미세하게 쪼개진 일이지만, 어쨌든 보수를 받기로 정하고 하는 데이터 제공이다. 하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제공하는 데이터는 그런 인식조차 없이 이뤄지는 ‘데이터 제공 노동’이다. 이용자들은 여흥, 오락, 관계맺기라고 생각하지만 플랫폼 입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원이고, 어떤 의미에선 기업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임승차하는 측면이 있는 노동이다. 기존 노동 개념으로는 담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00년대에 ‘다중지성’ 개념을 소개한 정치철학자 조정환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관계맺고 행동하는 과정이 없다면 빅데이터 만들기가 불가능하고, 빅데이터가 없으면 자동화, 기계화, 4차 산업혁명이 불가능하다”며 “기존 노동 개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페북·구글의 2018년 타깃 광고 수익 88조원…

그 절반 이용자들 노동의 몫으로 보면 1인당 122달러씩 돌아가


그렇게 생산된 데이터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샤피로가 지난해 민주당 성향 연구소 퓨처머조리티에 제출한 ‘누가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소유하는가’ 보고서를 보면 페이스북, 구글 등 거대 플랫폼기업들이 2018년 타깃 광고로 벌어들인 돈만 해도 760억달러(약 88조원)에 달한다. 그 절반이라도 인터넷 이용자들 노동의 몫으로 인정할 경우 미국인 인터넷 이용자 1인당 122달러씩 배분할 수 있고 2022년이 되면 1인당 308달러가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샤피로는 “자동차 생산업체 GM이 철, 고무, 유리 등 생산 투입물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윤을 얻을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며 “페이스북, 구글은 이러한 기본적 생산 투입물을 모두 공짜로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선 IT 기업들이 데이터로 얻는 이익에 부가가치세 도입 등 주장…

“GM이 자동차 생산 후 철·고무 등 비용 지불하지 않는다 상상해보라”


■ 자본은 데이터 축적 전쟁 중…따라잡지 못하는 국가

현재의 디지털 기업 모델은 데이터 독점뿐만 아니라 디지털 경제 전체의 독점으로 향해가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자신들의 핵심 사업에서 부산물로 얻어진 데이터를 이용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다른 기업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비교우위를 점한다.

구글은 전 세계 검색 시장의 92%를,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85%를, 페이스북과 구글은 미국 모바일 광고 시장의 56%를, 아마존은 미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50%와 e북 시장의 90%를 차지한다. 딜리버리히어로와 배민의 합병으로 국내 플랫폼 배달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는 공룡 배달기업 탄생을 눈앞에 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플랫폼들이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출혈경쟁을 하는 것은 가입자가 많을수록 과실을 독식하게 되는 디지털 경제의 특성 때문이다. 플랫폼들은 법과 제도가 이런 디지털 경제 모델의 본질이 정확히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새 시대의 자본을 축적하는 전쟁을 맹렬히 벌이고 있다. 이명호 여시재 솔루션디자이너는 “플랫폼기업들이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 데이터를 장악하고 오프라인 시장을 통제하면 저렴한 서비스 이용 비용 등 과거 소비자들이 누린 편의는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업들이 데이터로 인해 얻는 이익에 과세하거나, 데이터 제공자들에게 보상하게 하자는 방안이 미국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2020년 미국 대선의 민주당 경선주자 앤드루 양은 플랫폼기업이 데이터로 얻는 이익에 부가가치세를 과세해 만든 재원으로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한다. 반면 글렌 웨일은 시장원리에 따라 데이터를 많이 제공하는 이용자일수록 기업이 더 많은 돈을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생산의 3요소를 액화 ‘노동’(녹아내리는 노동)-데이터 ‘자본’(데이터)-가상 ‘토지’(인터넷망, GPS)로 개념화한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이렇게 말했다. “명동과 시골에 같은 건물을 세우더라도 명동의 빌딩은 사람들이 많이 가기 때문에 가치가 더 올라간다. 사람들이 많이 방문함으로써 데이터를 많이 갖게 된 플랫폼도 같은 이치로 가치가 더 올라간다. 명동 건물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손제민·심윤지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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