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 그 어디쯤.’
자유한국당과의 보수통합 열차에 올라탄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62·보수재건위원장·사진)의 요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보수통합이 시작됐다. 한국당을 향해 ‘일대일’ 협의체를 요구한 새보수당의 좌장 유승민 의원의 속내가 궁금했다. 유 의원은 보수통합 3원칙을 선언한 뒤 구체적인 통합 구상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1일 유 의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요즘 인터뷰 일절 안 하고 있다. 이해해달라”고만 답했다.
짧은 답변 안에 유 의원 상황이 녹아 있다. 한쪽에선 합리적 개혁 보수라는 명분을 지키라고 한다. 그러면 새보수당과 측근들이 죽는다. 살기 위해 한국당과 통합을 하자니 유승민만의 브랜드가 죽는다. 말 그대로 딜레마다.
합치면 합리적 이미지 훼손
실패 땐 신당·측근들 위태
자유한국당과 통합 딜레마
유 의원은 보수 야권에서 몇 되지 않는 ‘합리적 개혁 보수’ 이미지를 지닌 인사다. 그 이미지로 지난 대선에 출마했고, 실패했지만 합리적 보수라는 자기만의 브랜드를 완성했다.
그러나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 그에게는 조직이 없다. 당장 눈앞에 닥친 총선에서 측근을 살리지 않으면 그의 정치 인생은 사실상 끝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측근을 살려야 다음 대선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으로 나뉘어서는 총선 승리가 쉽지 않다. 유 의원이 통합 말고 한국당과 함께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그렇다 해도 문제는 시기와 방법이다. 새보수당 창당 깃발을 든 지 일주일이 되지 않아 한국당과의 통합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유 의원은 지난 13일 “새보수당은 보수가 제대로 거듭나고 저희 스스로 재건하기 위해 창당한 것”이라며 “한국당에 팔아먹으려고 당을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유 의원 입장에선 보수통합 논의가 다소 빨리 나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도로 새누리당’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새보수당만의 명분과 원칙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당 연석회의에서 “홍수가 나서 떠내려갈 때 지푸라기 잡는 사람은 전부 익사한다. 아무리 홍수가 나도 중심을 잃으면 안된다”고 한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유 의원 측근은 “유승민은 한국당의 변화된 모습을 이끌어내면서 통합 논의를 하고 싶어 했다”면서 “명분을 조금이라도 가져가야 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명분 뒤엔 ‘지분 확보’ 싸움
통합 서두를수록 당엔 손해
합당 아닌 선거연대 저울질
이 같은 명분 뒤에는 지분 확보 싸움이 숨어 있다. 합당을 하면 공천권, 당권 등을 둘러싼 다툼을 벌여야 하는데 통합 논의에 일찍 들어가봤자 한국당이란 거대 정당 앞에서 새보수당 입지는 크지 않다. 새보수당에는 8명의 현역 의원과 50여명의 원외 인사들이 있다. 새보수당 관계자는 “통합 논의에 일찍 발을 담글수록 우리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8인8색의 당이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새보수당이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시작하면서도 한국당에 당 대 당 협의를 요구한 것도 결국 지분 확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 의원 입장에선 통합의 방법이 합당이 아닐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대선을 바라보는 유 의원 입장에서는 세력화를 위해 합당보다 선거연대라는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보수당의 한 의원도 “한국당과 합당하면 유승민 입장에서는 (대선) 꿈에 불리하기 때문에 고민이 많은 것”이라고 전했다.
유 의원 고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수통합 열차는 출발했다. 한국당과 양당 협의체가 구성된 상황에서 이제부턴 먼저 내리는 사람이, 먼저 판을 깨는 사람이 ‘분열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그는 이 통합 열차를 끝까지 타고 갈 수 있을까.
임지선·박순봉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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