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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7 (금)

[사설] 신격호 타계, 창업 1세대의 기업가정신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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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타계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맨주먹으로 '롯데 제국'을 건설한 거인이었다. 1942년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껌사업을 시작한 그는 1967년 한국에 진출해 롯데를 세웠고 자산 115조원, 계열사 90개의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워냈다.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 유통, 화학, 금융 대기업을 일구고 '셔틀경영'을 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다. 그는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함)을 철학으로 실리경영을 펼쳤고 오랜 꿈이었던 123층의 마천루 롯데타워를 남기고 떠났다. 신 명예회장의 타계로 이병철 삼성 회장, 정주영 현대 회장, 구인회 LG 회장, 최종현 SK 회장 등 국내 산업계의 기틀을 닦았던 창업 1세대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들은 지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전자, 건설, 중공업, 자동차, 식품, 화학, 에너지 등 성장엔진을 만들고 한강의 기적을 주도했다. 우리 경제의 초석을 만든 거목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들이 남긴 유산은 적지 않다.

창업 1세대의 가장 큰 공통점은 불굴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이봐, 해봤어'로 대표되는 정주영 회장은 500원 지폐 속 거북선으로 외자를 유치해 울산 미포만 모래밭에 조선소를 세웠다. 이병철 회장은 1983년 모두가 무모하다고 뜯어말렸던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어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창업 1세대가 하나같이 신념으로 삼았던 것은 사업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사업 보국' 정신이었다. 신 명예회장이 외교 행낭에 자금을 숨겨 들여와 롯데호텔을 지은 것이나 1931년 포목점으로 사업을 시작한 구인회 회장이 생필품과 TV를 만들어 보급한 것은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재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최종현 회장은 '돈보다 인재'를 강조했고 삼성도 '인재제일'을 경영이념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반세기 만에 세계 6위 수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불도저 같은 돌파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끈 창업 1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이 초석을 튼튼히 다져줬으니 지금 기업인들은 더 잘해야 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기업가 정신은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다. 팽배해진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로 기업의 기는 눌릴 대로 눌린 상태다. 그런 탓에 기업들은 모험보다 안정을 추구한다. 창업 1세대들이 불모지에서 만들어낸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기업가의 야성을 되살려야 한다.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도전과 모험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혁신이 물결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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