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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근 재판 파기환송, 대법원의 ‘길들이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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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상고심 판결, “그래서 무죄인가” “누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가”



경향신문

2019년 2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 이상훈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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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지난 1월 9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그런데 여전히 많은 물음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안태근 전 국장은 무죄인가”와 “누구에게 던지는 메시지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건의 본질인 성추행 혐의는 1·2심 재판부 모두 ‘성추행 사실이 있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별도의 판단을 하지 않았다. 1·2심 판단에 따르자면 적어도 안 전 국장의 성추행 사실은 확인됐다. 성추행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그 사실을 덮기 위해 서 검사에게 불리한 인사발령을 내리도록 하는 직권남용을 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도, 안 전 국장의 항소를 기각한 2심도, 심지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한 대법원(3심)에서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판단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에는 변동이 없다.

판결문에 적힌 사실관계에 따르면 2010년 10월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은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해 서울 성모병원 빈소를 찾은 자리에서 서지현 검사의 몸을 수차례 만졌다. 서 검사는 당시에는 저항하지 못했지만 사건 발생 이후 주변 여검사 등에게 피해사실을 알렸다. 다만 구체적인 진상파악 요청은 하지 않아 사건은 종결처리됐다. 그러나 2015년 8월 검찰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안 전 국장은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감추기 위해 서 검사를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내는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여기의 기준이 되는 근거는 <검사인사원칙집>이었다.

판단 근거인 사실관계에는 변동 없어

여주지청과 통영지청은 지방검찰청 소속 소규모 지청으로 여기에는 검사장이나 차장검사가 없고, 지청장과 부장검사(검찰은 차장검사가 부장검사보다 높은 직급에 해당)가 배치돼 있어 ‘부치지청’으로 분류된다. 경력검사가 부치지청에 배치돼 수석검사로 근무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고충’이기 때문에 검찰인사위원회는 부치지청에서 근무한 경력검사는 다음 인사에서 우대해왔다. 서 검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부치지청 근무 경력검사가 곧바로 부치지청으로 발령나는 예는 없었다. 그러나 서 검사는 2015년 8월 검사인사에서 또다시 부치지청인 통영지청으로 발령났다. 서 검사가 희망지역으로 쓴 적도 없고, 검사인사 담당자인 신모 검사가 발령 전까지 작성한 인사안에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근무지였다.

안 전 국장은 그러나 법정에서 줄곧 자신은 애초에 성추행 사실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서 검사의 인사에도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안 전 국장은 또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사인사에 대한 일반적인 직무권한이 없고, 검사인사와 관련한 직무집행의 기준과 절차가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직권남용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는 그러나 “서 검사에 대한 성추행 소문의 확산을 막으려고 권한을 남용해 인사에 개입했다”고 판단,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직권을 남용해 검사인사 담당자 신모 검사가 검사인사의 ‘원칙과 기준’에 반(反)해 서 검사를 또 다른 부치지청(통영지청)에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작성하게 함으로써 권리행사를 방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안 전 국장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애초에 부치지청에서 근무한 경력검사가 또다시 부치지청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확고하게 정해진 ‘원칙과 기준’이 아닌 ‘배려’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형법 제123조에 명시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법조인들조차 해석이 분분한 법조항이다. 조문에 기재된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서 판단해야 하고,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조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해 기소하는 검사도, 이 죄명으로 기소된 사건을 판단하는 재판부도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법은 법적 안정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조문 자체가 안정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대법원은 이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일정한 공식을 만들어놓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 역시 해석이 분분하다. 대법원이 내세우는 원칙은 ‘권한 없이 남용 없다’다. 공무원의 직무권한 범위 내에 속한 행위가 아니면 그 행위가 월권행위이든 권한범위 밖의 불법행위이든 관계없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해석 분분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는 부치지청에서 근무한 경력검사를 차기 전보인사에서 ‘배려’한다는 내용에 불과하고, 검사인사담당 검사가 검사의 전보인사안을 작성함에 있어 지켜야 할 일의적·절대적 기준이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은 이 공식에 따른 결론으로 볼 수 있다. 이는 1981년 4월 13일 검찰인사위원회 제도를 마련한 ‘검사의 임용·전보의 원칙과 기준에 관한 사항’을 모은 <검사인사원칙집>이 검사인사 담당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인사기준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해진 원칙이 없으니 원칙을 위반한 행위 자체도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셈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닌 소부에서 내린 판결이더라도 일선 법원에서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이번 대법원 판결이 현재 1심 재판 중인 사법농단 사건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이 직권을 남용해 특정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에 대한 판단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실제 2019년 11월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47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전 인사 심의관)는 “여러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 처분이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의 현실적인 측면도 있었다. 때문에 ‘불리한 처분’에 인사상 불이익이 포함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실무자들은 이해해 왔다. 또 법관의 직은 직이나 보직, 근무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다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전보인사에 있어 본인 희망과 달리 보직이나 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이 헌법에서 말하는 불리한 처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불리한 인사가 있더라도 정해진 원칙이 없고, 모든 인사대상자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했을 때 인사상 불이익이 곧 불이익한 처분으로 보기 어렵다는 논리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예측 가능하다. 여기에는 원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기판결(破棄判決)의 기속력(羈束力)’ 즉 상고심이 내린 취지대로 판단하라는 원칙이다. 안 전 국장은 무죄다.

대법원의 판단은 모든 하급심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안 전 국장 한 명에게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때문에 이번 판결이 오롯이 안 전 국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만을 향한 메시지로 보기 어렵다는 의혹의 눈길은 앞으로 대법원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을 듯싶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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