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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이슈 로봇이 온다

연말 대중교통 무료·로봇이 키위 수확…뉴질랜드 전체가 실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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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난 11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도심에 위치한 퀸엘리자베스 광장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클랜드 교통당국은 최근 연말연시 연휴에 시민들을 위해 버스, 기차, 페리 등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했다. 뉴질랜드 정부의 민첩성과 파격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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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퇴근길에는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입니다." 지난달 20일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앞두고 방문한 뉴질랜드 오클랜드는 마침 대중교통 '무료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었다. 최소 2주 이상 지속되는 연휴 시즌을 앞둔 마지막 근무일에 오클랜드 교통당국이 내린 파격적인 결정이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들떠 보였다. 오클랜드 교통당국은 "퇴근 후 음주 계획이 많은 시민을 위해 버스, 기차, 페리 등을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고 선언했다. 공휴일도 아니고, 특별한 국가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153만명 규모의 대도시가 시민들의 '안전 귀가'를 책임진다며 이렇게 발표한 것이다. 20년 체류해 온 김미경 KOTRA 오클랜드 무역관 차장은 "뉴질랜드는 국가 정책이 비교적 쉽게쉽게 결정된다. 실험정신이 매우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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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다 아던 총리


뉴질랜드가 매년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에서 4년 연속 1위에 오른 데는 바로 이러한 파격적인 실험정신이 바탕이 됐다. 그는 "왠지 모르게 수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 같은 내용도 뉴질랜드는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혁신적으로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창업가 배려, 소액 투자자 보호, 단순한 세금제도 등을 평가하는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런 환경 덕분에 '1인 기업'의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스타트업이 많다. 뉴질랜드 통계국에 따르면 총 53만4933개 기업 중 99.5%가 99명 이하 소규모 기업이다. 전체 기업 형태 중 가장 높은 비율이 1인 기업(37만6785개, 70%)이다. 고용직 223만명 중 절반 이상(52%)이 99인 이하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기둥으로 불린다. 뉴질랜드는 우주항공, 로봇공학, 정밀농업, 디지털 영상기술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래 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18년에는 미국·뉴질랜드의 합작 스타트업 '로켓랩'이 세계 최초로 민간 인공위성을 발사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스페이스X를 앞선 성과였다. 영화 '아바타'의 특수효과로 유명한 시각효과 스튜디오 '웨타 디지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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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대국이지만 인구가 많지 않아 정밀 농업기술이 발달했다. 드론으로 농약을 살포하고 인공지능(AI)으로 스마트팜을 관리하는 식이다. 정부와 민간 지원으로 공학·농업·약학 분야 등의 교수와 학생, 연구원 200여 명이 모여 있는 오클랜드대 자동화·로봇공학센터(CARES)에서는 2014년 시작한 키위 과수원 로봇 수확 프로젝트를 작년에 완성시켜 현재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안호석 CARES 부센터장은 "뉴질랜드가 첨단 기술과 거리가 먼 국가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특히 농업로봇·헬스케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면서 "내수 시장만으로는 경쟁력을 발전시킬 수 없기에 정부가 해외 시장 개척을 장려하고 학교와 민간의 협력을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뉴질랜드를 테스트베드로 선정하기도 한다. 안 부센터장은 "뉴질랜드는 서양의 표준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인종이 많은 국가여서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은 기업에는 상품을 실험하기에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화이자를 비롯한 세계적 제약사들이 뉴질랜드에서 시장 테스트를 진행해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에어택시 전문기업 위스크는 뉴질랜드를 최초의 테스트 시장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2018년 에어뉴질랜드와 업무협력을 체결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파커 통상장관 겸 재무차관은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풍부한 천연자원은 물론이고 불균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숫자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전 세계 네트워크와 연결돼 혁신적이고 활기차다"고 자랑했다. 그는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규제를 적용하고 실험하는 일이 더 쉽다"며 "환경 규제는 많아도 그 외 부분에서는 자유를 많이 주고 있다. 어떤 것을 하라, 하지 말라 이런 말 자체를 많이 안 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업에 탄소 배출 등 필수적인 환경 규제를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한다. 기업들은 사회·도덕적 의무와 투명한 기업 경영을 약속하며 서로 간에 '신뢰경제'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도 뉴질랜드를 '기업 천국'으로 만들었다. 저신다 아던 정부는 기업들이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1만 뉴질랜드달러(NZD·약 780만원)만 지출해도 법인세를 감면 해주는 세제정책을 마련 중이다. 올해 예산에는 스타트업 창업자의 '패자부활'을 돕기 위한 벤처기업 간 투자 지원금(3억 뉴질랜드달러·약 2330억원)과 저탄소 기업 장려금(1억 뉴질랜드달러·약 825억원)을 대거 편성했다.

[특별취재팀 = 안두원 차장(팀장) / 김제관 기자(룩셈부르크) / 김덕식 기자(파리) / 고보현 기자(오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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