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8월 미국 LA 엑스프라이즈(XPRIZE) 재단에서 미세먼지 해결 현상 공모전 설계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셋째부터 안 전 대표, 아누셰 안사리 엑스프라이즈재단 CEO, 최성호 동그라미재단 이사장. [사진 제공 = 동그라미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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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 복귀를 선언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다음주 귀국을 앞두고 15일 매일경제에 특별기고문을 보내와 정계 복귀 심경과 향후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혔다. 안 전 대표가 귀국을 앞두고 언론사에 특별기고문을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전 대표는 기고문에서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 'CES 2020'을 언급하며 "지금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바깥에서 지켜본 대한민국은 미래로 가는 모습이 아니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어 "과거에 얽매여 싸움만 하는 정치, 규제의 틀에 묶여 꼼짝 못하는 기업들, 보편적 정의와 공정의 가치마저 무너진 분열된 사회는 전 세계적 흐름과는 너무 다르다"고 현재 한국의 상황을 진단했다.
안 전 대표는 "결국 정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문재인정부를 겨냥해 "정치 조직의 '진영 논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진영 논리는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한다"며 "이것은 전체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 편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분열된 사회에서는 집단지성도 공동체정신도 발휘될 수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정계 복귀 이후 자신이 펼칠 정치적 비전도 제시했다. 그는 "이념과 진영 정치, 극단적 배제와 대결의 정치는 통합과 미래의 걸림돌일 뿐"이라며 "기술의 진보, 다양성의 시대 흐름에 맞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온 이념과 진영 논리를 깨야 한다"며 "정부와 정치가 혁신되고 사회 통합을 이룬다면 우리는 미래로 질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전 대표는 또 해외 유학 기간 중 체류했던 독일 사례를 들며 "독일이 전후 22번이나 정부를 구성하면서 단 한 번도 단독 정부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며 "연정을 통해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힘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안 전 대표가 총선 전에 귀국해 정계 복귀 의사를 밝힘에 따라 현재 보수진영이 추진하고 있는 보수 빅텐트 통합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 다음은 안철수 전 대표의 특별기고문.
나는 세계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기 위해 매년 혁신에 관한 3대 전시회인 CES, MWC, IFA를 돌아가면서 참관하고 있다. 전시회는 저마다 화려한 부스를 뽐내지만 실상은 치열한 혁신 경쟁의 전쟁터다.
올해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의 슬로건은 '일상 속으로 돌아온 인공지능(AI)'이다. AI가 차세대 신기술이 아니라 이미 보편적 기술이 되고 일상화돼 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금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미래로 질주하는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바깥에서 지켜본 대한민국은 미래로 가는 모습이 아니다. 과거에 얽매여 싸움만 하는 정치, 규제의 틀에 묶여 꼼짝 못하는 기업들, 보편적 정의와 공정의 가치마저 무너진 분열된 사회는 전 세계적인 흐름과는 너무 다르다.
미국 포천지가 발표한 '2019 퓨처(future) 50' 명단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미국은 아마존·알파벳(구글) 등 28곳, 중국은 샤오미·알리바바 등 16곳이 포함됐다. 충격적인 결과의 원인은 간단하다. 미래 산업에 대해서도 표의 유불리만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정치권의 무지와 단견, 관료들의 '철밥통' 규제가 우리 기업의 도전과 창의를 붙잡았을 것이다. 재벌 중심 경제 이후 한국 경제는 네이버나 카카오 외에 제대로 된 신생 중견기업의 출현을 보지 못했다.
시장의 규제를 풀면 역동성과 성장동력이 살아난다. 기업이 펄펄 날 수 있도록 시장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대신 정부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스포츠에서 규칙은 단순화해 선수들이 자유롭게 역량을 발휘하게 하지만, 심판은 더 철저히 반칙이 없도록 감시하는 원리와 같다.
지금 우리 정부에 시급한 것은 기업 등에 올라타서 발표하는 정치 퍼포먼스가 아니라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앞장서서 이쪽으로 가라고 하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창의적인 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예가 미국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실패해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면 다시 기회를 준다. 결국 개인적인 실패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만드는 '축적'의 문화가 핵심인 것이다.
또한 기술의 진보에 맞는 사회 윤리와 규범 정립은 미래로 가는 중요한 정치사회적 기반이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정직과 합리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점이다. 독일인은 질서를 잘 지키고 정확한 사실을 중시하며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감도 대단하다. 사회적 평판을 매우 중요시한다. 실패한 사람은 다시 기회를 잡아도, 거짓말을 하거나 평판이 나쁜 사람은 사회에 다시 발을 들여놓기 힘들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가짜뉴스와 사기 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 오죽하면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 첫머리부터 나오는 말이 사기공화국이겠는가? 정치조직의 '진영 논리'는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진영 논리는 자기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한다. 반면에 내 편의 생각은 틀린 생각도 옳다고 여긴다. 이것은 전체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인지 아닌지만 따지는 분열된 사회에서는 집단 지성도 공동체 정신도 발휘될 수도 없고,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다.
결국 정치가 문제다. 독일은 전후 22번이나 정부를 구성하면서 단 한 번도 단독정부의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연정을 통해 대화하고 타협하면서 힘을 모았다. 이념적 극단과 민족주의, 전체주의 등 현대사의 비극을 겪으면서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반성과 성찰 끝에 이러한 정치를 만들어 냈다. 오늘의 독일이 있기까지는 타협의 정치문화와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있었다.
이에 반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불안한 데는 수십 년간 국민적 에너지를 소모시켜 온 낡은 정치가 자리 잡고 있다. 이념과 진영의 정치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건강하고 보편적인 사회규범과 가치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혜다. 공존의 정치가 국민 통합을 이뤄내고 미래로 가는 열정과 동력을 만들 수 있다. 이념과 진영정치, 극단적 배제와 대결의 정치는 통합과 미래의 걸림돌일 뿐이다.
또한 기술의 진보, 다양성의 시대 흐름에 맞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합리적 개혁과 실용적 사고가 정치·경제·사회의 중심에 서야 한다. 현대 중국을 일으킨 것은 교조적 사회주의에서 벗어난 사상의 자유, 즉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아니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 실용정신이었다. 우리도 이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를 지배해 온 이념과 진영 논리를 깨야 한다.
한반도 정세는 더욱 엄중해졌다.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 외교는 불안하다. 동맹을 튼튼히 하면서 우리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화하는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우리의 전략적 중요성은 지정학적 위치를 넘어 세계 4차 산업혁명과 AI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국가로서 위상을 갖출 때 극대화될 수 있다. 정부와 정치가 혁신되고 사회통합을 이룬다면 우리는 미래로 질주할 수 있다.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는 오롯이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고재만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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