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9일 천대엽·윤준·권기훈·노태악씨 등 4명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김 대법원장은 16일까지 이들에 대한 시민들 의견을 수렴한 뒤 1명을 골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한다. 모두 현직 법관인 후보자 4명은 자신이 했던 주요 판결을 직접 선택해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면면을 살펴봤다.
대법관 후보자 4명. 왼쪽부터 천대엽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윤준 수원지방법원장, 권기훈 서울북부지방법원장, 노태악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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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부터 이재용까지
천대엽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윤준 수원지방법원장이 꼽은 주요 판결에는 정치·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들이 있었다.
천 부장판사는 2013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선고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을 제시했다. 천 부장판사는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업무를 총괄하며 이 전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경호처가 떠안게 해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된 김인종 전 청와대 경호처장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천 부장판사는 이 판결에 대해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 부지 매입 관련 편법으로 국고 지원을 하는 행위가 국고횡령에 해당함을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천 부장판사는 신학용 전 국민의당 의원 사건을 들며 국회의원의 각종 기부금과 정치자금 수수의 엄정성을 강조했다. 사립유치원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한 대가로 출판기념회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신 전 의원에게 천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윤준 수원지방법원장은 2016년 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사건을 심리했다. 보복 기소 논란이 있던 상황에서 윤 법원장은 유씨 혐의 중 불법 대북송금 부분은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한 것이라며 기소 자체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윤 법원장은 이 판결에 대해 “우리나라 형사사법 사상 검찰의 보복 기소에 대해 공소권 남용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검찰권의 적정한 견제를 통해 피의자의 인권과 형사사법 정의를 증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윤 법원장은 삼성SDS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저가로 발행한 것은 무효라며 참여연대가 낸 신주발생 금지 가처분신청을 서울고등법원이 인용한 판결도 주요 판결로 소개했다. 윤 법원장은 이 사건의 주심이었다. 윤 법원장은 “삼성그룹의 편법적인 기업승계에 제동을 건 결정으로 소액주주 보호의 선도적 사례로 평가된다”고 했다.
■소수자 보호 판결은 적어
권기훈 서울북부지방법원장은 1991년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이던 고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작성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씨에게 재심을 통해 23년 만에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의 재판장이었다.
권 법원장이 꼽은 주요 판결 중 눈에 띄는 것은 부부 사이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판결이다. 권 법원장은 흉기를 이용해 아내를 폭행하고 강제로 강간한 사건에서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실형을 선고했다. 권 법원장은 “부부 강간 사건의 항소심에서는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했고, 부부 사이의 강간죄 성립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했다. 대법관 후보자 4명이 주요 판결로 내놓은 전체 24건 중 성폭력 사건은 유일하다.
노태악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부 재판장으로 있을 때 KBS 대하드라마 <서울 1945>의 PD와 작가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주요 판결로 소개했다. 이 드라마 PD와 작가는 고 이승만 대통령과 장택상 전 국무총리 등의 명예를 훼손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장 전 총리가 이 전 대통령에게 ‘친일 경찰’을 “사건 해결의 최대 공로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노 부장판사는 또 야간 근무 중 취객을 상대하다 뇌출혈이 발병한 경찰관과 혈관육종이라는 희귀병 발병으로 사망한 소방관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한 판결을 주요 판결로 꼽았다. 노 부장판사는 “야간 근무 때 고도의 정신적 긴장이 요청되고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경찰관의 상병이나, 유독성 물질에 상시 노출돼 발생하는 소방관의 희귀병으로 인한 사망에 관해 공무상 재해와의 인과관계를 전향적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4명 후보자들은 모두 50대 남성 판사다. 그동안 대법관 구성이 이른바 ‘서오남(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 판사)’에 치우쳐 다양화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관 후보는 시민 천거를 받은 뒤 당사자 동의를 거쳐 후보추천위원회가 심사한다. 이번에는 당초 후보추천위원회 심사 대상으로 추려진 21명에 여성이 1명, 변호사가 5명 뿐이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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