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만 붙였을 때 기성 정당과 오인·혼동…유권자 의사 왜곡"
한국당 강력 반발 "與 논리 받아들여 선거 중립 저버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3일 4·15 총선에서 정당 명칭에 '비례'를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맞서 비례의석 확보를 극대화하기 위해 창당을 추진 중인 '비례자유한국당'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 결성 신고서를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한국당의 총선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선관위는 이날 경기도 과천 청사에서 선관위원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당의 '비례자유한국당'을 포함해 창당준비위 신고서가 접수된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 등도 당명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비례한국당, 비례민주당은 한국당·민주당과 무관한 곳이다.
선관위는 이날 회의 후 보도자료를 통해 "'비례○○당'은 이미 등록된 정당의 명칭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며 "정당법 41조 제3항에 위반되므로 그 명칭을 정당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정당법 41조 3항은 정당 명칭은 이미 등록된 정당 명칭과 뚜렷이 구별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름이 비슷한 정당이 이미 있을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관위는 이어 "이 결정은 유권자들이 정당을 오인해 정치적 의사가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례'는 사전적 의미만으로 정당의 정책과 정치적 신념 등 어떠한 가치를 내포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워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고 비례라는 단어와의 결합으로 이미 등록된 정당과 구별된 새로운 관념이 생겨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선관위는 또 "투표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배부받은 '비례대표선거' 투표용지에 게재된 내용에 비추어 ‘비례○○당’의 ‘비례’의 의미를 지역구 후보를 추천한 정당과 동일한 정당으로 인식할 수 있는 이른바 후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불허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한국당은 이런 효과를 기대하고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에 나섰다. 그러나 선관위는 "기성정당 명칭에 ‘비례’만을 붙인 경우 언론보도, SNS, 유튜브 등의 매체와 얼마 남지 않는 국회의원선거 선거운동 과정을 통하여 유권자들이 기성정당과 오인·혼동할 우려가 많다"고 했다.
선관위는 "‘비례○○당’ 사용을 허용하는 경우 무분별한 정당 명칭의 선점·오용으로 정당 활동의 자유 침해와 유사명칭 사용으로 인한 유권자들의 혼란으로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이 왜곡되는 선거 결과를 가져오는 등 선거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선관위의 이번 결정에 대해 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당은 더불어민주당과 범여 군소야당이 범여권 다수 의석 확보를 위해 한국당의 반대에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을 강행 처리했다며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10일 "중앙선관위는 비례 위성정당 명칭 사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은 지난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당법에 창당을 준비하는 정당 명칭은 기존 정당 명칭과 뚜렷하게 구별돼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며 불허 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민주당이 사실상 선관위에 '비례자유한국당을 불허하라'는 지침을 준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조 상임위원이 선관위원들의 회의 하루 전날 불허를 종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며 반발했다. 조 위원은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 캠프 특보를 맡았고 작년 1월 한국당의 반대 속에 선관위 상임위원에 임명됐다. 한국당 관계자는 "이날 선관위가 앞세운 논리는 전부 민주당이 '비례민주당'을 불허하게 해달라면서 신청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을 뿐 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비례자유한국당을 설립하려는 논리는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선관위가 정권과 민주당 편에서 일방적으로 편을 들었다"며 "선거 중립이라는 선관위 본연의 의무를 저버렸다"고 했다.
[김명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