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文, 美의 남북관계 개선 견제 참고 참아와⋯ 새로운 길 가야"
이해찬 "文, 참다가 임계점 오면 과감하게 행동⋯ 지금이 거의 임계점"
전문가들 "北 비핵화 진전 없는데, 우리가 나서서 제재 대열 흔드는 건 문제"
문재인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정세현 수석부의장은 이날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견제했는데 문 대통령도 참고 참았다"며 "올해는 우리가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남북 교류·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이 지난달 18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통일관에서 열린 재개관 행사에서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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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인 남북 교류·협력 확대 길 가나
여권의 이런 기조는 미·북 비핵화 협상 국면에 얽매이지 않고 독자적인 남북 협력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지난 2일 신년 합동인사회에서 "평화는 행동 없이 오지 않는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운신의 폭을 넓혀 노력해 나가겠다"고 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온 대북 제재를 풀지 않고 고수해왔다. 이 때문에 남북 협력도 가로막혔는데 올해는 이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남북 협력은 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이와 관련, 정세현 부의장은 "작년에는 북한과 철도 연결도 못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못했다"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유엔 대북제재와는 무관하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중단시킨 것인데 미국은 유엔 제재를 한국이 깨뜨려서 되겠느냐는 논리로 방해를 했다"고 말했다. 정 부의장의 이 발언을 뒤집어 보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국제 제재와 직접 관련 있는 것은 아니라 보고 재개를 추진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지난 3일 노무현재단의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나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미 관계에서 문 대통령이 독자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의 성격이 참을 때까지 참고, 임계선에 왔다 하면 과감하게 하는 분"이라며 "지금 거의 임계선에 왔을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도 신년 들어 남·북·미 간 공간 확보를 위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핵 억제·포기시킬 대북 제재 허무나"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로 시작된 미·북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미국의 '최대 압박' 정책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 제재 완화와 경제 협력이라는 '당근'을 제시하겠단 것이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현 시점에 '남북 교류·협력 확대' 신호를 보내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현재 대화 교착 국면은 북한이 비핵화 진전 행동을 취하지 않은데다, 미국의 대화 제안도 계속 거부하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와 미 고위 관리들은 북이 핵을 포기한다는 말을 믿지 않으면서 북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블러핑(허세)'하고 있다"고 했다. 애초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미 행정부 수뇌들도 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 도발을 억제하고 나아가 핵을 포기하도록 할 유일한 수단은 '제재'뿐이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남북 협력 명목으로 제재 전선을 이완시키는 행동으로 나가면 북한으로선 더욱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교류협력 메시지를 워싱턴과 평양에서 다르게 해석하며 '촉진자'나 '중재자' 역할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현 시점에 남북 교류·협력 메시지를 내는 것은 워싱턴과 평양 양쪽에 다른 시그널을 보내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워싱턴에선 한국을 대북 제재 구멍으로 보게 될 것이고, 북한에선 '대북 제재에 막혀 아무것도 못할 거면서 허풍만 친다'고 얕잡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은 현재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정면 돌파하겠다고 선언한 뒤, 한국에 대해선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무시한다고 해서 조급해서 어떠한 일을 벌이기 보다는 인내하고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보내는 교류·협력 메시지는 마치 우리가 북한에 구걸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며 "'교류협력보다 비핵화가 먼저'라는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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