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개혁보수신당(가칭) 중앙당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새로운보수당이 5일 공식 창당했다. 집단지도체제를 택했지만 간판은 역시 유승민 의원이다.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등을 거쳐온 유 의원 입장에선 사실상 첫 '창업'이다. '개혁 보수' 기치는 계속 유지했지만 '홀로서기'에 나선 가게 규모는 많이 줄었다.
◇'보수'와 '개혁'의 방정식이 만든 유승민의 정치궤적
유 의원의 정치행보는 '보수'와 '개혁'으로 요약된다. 안보는 보수를 추구하고 경제는 개혁에 방점을 찍는다. 자칫 상충될 수 있는 이 가치는 유 의원의 정치 궤적에 그대로 투영된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부조리하다고 생각되는 사안과 맞닥뜨렸을 때 취할 수 있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다. 조용히 떠나거나, 남아서 목소리를 내거나(exit or voice). 17년 동안의 정치 생활에서 내가 선택한 쪽은 대부분 남아서 목소리를 끝까지 내는 것(voice)이었다."(유승민,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유 의원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유 의원의 정치 행보를 보면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나는 쪽보다 대부분 남아서 목소리를 내며 끝까지 싸우는 쪽이었다.
탄핵정국에서도 초기에는 "탈당은 어떻게 보면 쉬운 길이다. 당에 남아 보수 정당을 진정으로 개혁하는데 주력하겠다"(2016년 11월24일, 새누리당 대구여성정치아카데미수료식)는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 새누리당 내 친박계를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비박계를 중심으로 탈당후 창당이 각각 논의되던 시기였다.
두 기류와 달리 유 의원은 당을 지키되 내부에서 개혁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탈당도 마지막 순간까지 미뤘다. 이후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과 함께 바른정당 창당에 합류한 것이 유 의원의 정치인생에서의 사실상 첫 도전이었다.
2017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보수신당(가칭) 당명채택회의에서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과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당명을 '바른정당'으로 확정한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승민 의원, 정병국 창당준비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김무성 전 대표, 이종구 정책위의장./사진=뉴시스 |
◇정치적 한계드러낸 바른정당 창당 실험
결과적으로 유 의원의 첫 도전은 실패로 끝난다. '따뜻한 보수, 깨끗한 보수'라는 기치를 내걸고 개혁보수정당을 꿈 꿨지만 창당 1년여 만에 바른정당의 간판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유 의원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자유한국당과 후보단일화 과정에 소통방식의 한계가 여과없이 노출됐다.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소속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유 의원의 '소신'은 '아집'으로 비쳐졌다.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33석의 원내교섭단체는 9석으로 축소된다.
원래 바른정당의 최대주주는 김무성 의원이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김 의원을 따르던 이른바 '김무성계'에 '유승민계'의원 일부가 합류하면서 만들어진 게 바른정당이다. 바른정당 '창업주'보다 지분을 가진 '이사'에 가까웠던 유 의원은 여러차례 탈당사태를 겪으며 당의 '자의반 타의반'으로 바른정당의 최대주주가 된다.
김무성계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탈당해 한국당으로 복당할 때도 유 의원은 바른정당에 남는 쪽을 택한다. 바른정당에 남아 보수개혁 실험을 더 해보겠다는 판단이었다. 유 의원은 "죽음의 계곡에서 당을 지키겠다"며 바른정당 대표를 맡아 19대 대선이후 다시 당 전면에 섰다.
2018년 2월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식에서 통추위 공동대표인 안철수, 유승민 대표가 개회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뜻한번 제대로 못펴본 '바른미래당'
유 의원은 바른정당 최대주주가 된 후 두번째 도전에 나선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과 합당을 추진한다.
합당 당시 유 의원은 '반대파'였다. 그러나 기초·광역단체장선거, 기초·광역의원 선거를 치러야하는 지역위원장들이 수차례 합당을 강하게 주장하자 안 대표와의 합당을 추진, 2018년 2월 바른미래당을 창당한다.
보수정당을 표방한 바른정당과 민주당으로부터 갈라져나온 국민의당이 합당하다보니 당 정체성도 정리하지 못한 채 한집살림을 시작했다. 바른미래당 강령에 '보수'를 넣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는 충돌했다.
이후에도 대안정당으로서의 참신함보다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의 계파싸움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였다. 국회 내 캐스팅보트 역할도 놓쳤다. 중도와 보수의 결합으로 거대 양당 속 '대안정당'의 역할을 해주리라 기대는 사라졌다. 중도, 보수 모두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유 의원의 바른정당계는 수적으로 다수인 국민의당계(창당기준 국민의당계 21석, 바른정당계 9석)에 밀렸다. "2년 전 결혼을 잘못해서 고생을 많이했다"는 유 의원의 말처럼 바른미래당과의 합당 실험도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이 났다.
◇'홀로서기' 첫도전 새보수당 창당…달라진 것은 없다
새로운보수당은 유 의원이 '홀로서기'에 나선 첫 도전이다. 사실상 유 의원이 혼자 창당한 첫 정당이 새보수당이라는 얘기다. 유 의원의 목표는 '보수재건'이다. 재건의 방향은 '개혁보수'다. 사실상 바른정당을 창당했을 때의 마음가짐과 다르지 않다.
19대 대선 후보 시절 유 의원은 한국당과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당내 요구에 대해 "한국당은 썩고 부패한 보수"라며 "새로운 개혁적 보수를 하겠다고 창당한 저희(바른 정당)가 그런 단일화를 한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고 일축했다. 한국당 내부 개혁이 없다면 손잡을 수 없다는 얘기다.
총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도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초심'이 답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바른정당 시절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당 내부의 목소리에 속절없이 흔들렸다면 이번에는 선제적으로 원칙과 기준을 세운 점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가자 △낡은집을 허물고 새로 짓자는 이른바 통합을 위한 3대 전제조건이다. 이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통합 논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 내부를 다잡았다.
결기도 남다르다. 약 100억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당의 자산과 국고보조금을 모두 포기하고 바른미래당을 뛰쳐나왔다.
유 의원은 "진보도 몰락하고 보수도 몰락한 이 상황에서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정치세력은 우리 밖에 없다"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보수당을 힘차게 시작하면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민우 기자 minuk@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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