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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5G, 부총리-우주항공…역할 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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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신년기획 / 젊은 리더가 이끈다 ① ◆

지난달 11일(현지시간) 룩셈부르크대가 위치한 벨발. 해가 질 무렵에 도착했는데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기묘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하지만 낡은 용광로가 길게 늘어서 있는 바로 옆에 전면이 유리로 된 신식 건물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안에서는 최근 룩셈부르크 정부가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우주 산업과 관련된 스타트업들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과거-현재-미래'가 함께 들어선 이 공간이 바로 룩셈부르크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룩셈부르크 정부의 발 빠른 생존전략을 드러내는 전시장이다.

영토는 좁고 자원은 부족한 룩셈부르크가 지금처럼 높은 소득수준을 자랑할 수 있었던 데는 정부의 신속한 대처가 큰 역할을 했다. 룩셈부르크는 19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농업국가였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해 군수물자를 생산하면서 철강을 주력 산업으로 키워 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철강산업은 1960년대까지 룩셈부르크의 중심 산업이었다. 그러다 1970년대 철강산업이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거센 도전을 받아 쇠퇴할 기미를 보이자 금융업으로 눈을 돌렸다. 금융업 육성을 위해 정부는 주식·채권 거래에서 발생한 자본 이득에 대해 원천 과세를 면제해줬다. 금융사 자회사 설립 시 자본금 납입 의무와 양도세를 폐지해 글로벌 금융사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송금 수수료율도 현재 유럽에서 가장 낮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럽계 은행들이 연달아 문을 닫자 룩셈부르크는 차세대 먹거리 개발에 나섰는데, 그중 가장 핵심이 바로 우주항공산업이다. 룩셈부르크 의회는 최근 기업이 소행성에서 채굴한 자원을 예전처럼 공공 소유물로 취급하지 않고 기업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유럽 최초의 민간 인공위성 운영회사인 SES는 현재 인공위성 73기(정지궤도 54기, 중궤도 19기)를 운용하고 있는 세계 2위 업체다. 금융 강국이라 자본 조달이 용이하고, 최근 기술 개발로 우주선 발사 비용이 낮아지면서 우주항공 산업 가능성은 더 밝아졌다. 해외 우수 인재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문도 활짝 열어놨다.

룩셈부르크 정부가 유연하게 전략 산업을 바꿔 가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정부와 기업 모두 원활한 소통을 꼽는다.

장 슐츠 룩셈부르크 경제부 부국장은 "룩셈부르크에서는 항상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이 모여서 현재와 미래를 논의한다"며 "룩셈부르크 모델의 핵심은 소통과 합의"라고 강조했다. 총리, 경제부 장관, 주요 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가 수시로 경제부 청사에서 열린다. 아무리 작은 스타트업이라도 정부 관련 부처 공무원들과 만나기 쉽고, 정부는 스타트업이 만나고 싶어하는 기관·기업 관계자들과 원활한 소통을 돕는다.

분권형 리더십과 공무원들의 전문성도 성공에 한몫했다. 룩셈부르크는 총리 1인이 모든 경제 안건을 주도하는 대신 주요 장관들이 핵심 경제 분야를 나눠 맡아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그자비에 베텔 총리가 자율주행자동차·5G 등 분야를 챙긴다면 에티엔 슈나이더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항공우주 산업에 집중하는 식이다. 또 룩셈부르크 정부 부처에서는 임기가 정해진 장관만 바뀔 뿐 실무 공무원들은 10년 이상 같은 업무를 담당해 높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업들을 효과적으로 돕고 있다.

[특별취재팀 = 안두원 차장(팀장) / 김제관 기자(룩셈부르크) / 김덕식 기자(파리) / 고보현 기자(오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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