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9명과 피해자 유족·가족 12명이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한일 위안부 합의' 위헌심판 대상 아니다"며 각하 결정을 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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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위안부 합의는 정치적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습니다.”
27일 헌법재판소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는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강일출 할머니 등 피해 할머니 29명 유족 등 12명이 “한일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고 헌법소원을 낸 지 3년 9개월여 만에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청구를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본안 자체를 판단할 필요가 없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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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이냐 비구속적 합의냐
헌재는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나 위험성을 갖고 있지 않는다고 봤다. 위안부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조약이 아닌 ‘합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 명문화된 ‘조약’에 대한 개념은 없다. 다만 헌법 제60조 제1항 등에 조약이 언급된다. 해당 조문에는 국회가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 등에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나온다. 또 헌법 제73조는 대통령에게 조약체결권을 부여하고 헌법 제89조 제3호는 조약안에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정한다.
헌재는 이런 조약과 합의를 분명하게 구분했다. 헌재는 “국가 간 합의는 구속력을 부여하기에는 너무 추상적이거나 구체성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고, 조약 체결의 형식적 절차를 거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항의나 비판의 근거가 될 수는 있지만, 법적 구속력과는 구분된다”고 결정문에 명시했다. 2015년 위안부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합의에 그친다면 그로 인해 우리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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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위안부 합의는 어땠나
윤병세 외교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015년 12월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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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조약과 합의를 구분하는 형식적ㆍ실질적 측면을 상세하게 결정문에 썼다. 형식적으로는 ▶합의의 명칭 ▶서면으로 이뤄졌는지 ▶국내법상 법적 절차 거쳤는지 등을 고려한다. 실질적으로는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려는 당사자의 의도가 인정되는지 여부 ▶구체적인 권리나 의무를 만들어 내는지 등 실체적인 측면을 종합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2015년 한일 합의 과정을 하나하나 짚었다. 당시 합의는 구두 형식으로 이뤄졌다. 2014년 4월부터 국장급 협의를 해오던 한일 양국은 2015년 11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고려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그해 12월 28일 고위급 협의의 합의 내용을 한일 외교부 장관이 구두로 확인했고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한일 양국 정상은 전화통화로 이를 추인했다.
헌재는 당시 위안부 합의가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한국에서는 '기자회견', 일본에서는 '기자발표'로 통상적인 조약과는 다른 명칭이 붙었다고 지적했다. 한일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하는 문제임에도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 동의 같은 조약 체결 절차도 없었던 점도 근거가 됐다. 헌재는 “전체적으로 모호하거나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돼 있고 국제법상 의도를 추단할만한 표현은 없다”고 이 합의를 조약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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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합의 내용,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뿐”
한일 합의의 내용 역시 법적으로 구체적인 권리나 의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헌재는 “합의에는 위안부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 책임이 적시돼있지 않고, 일본군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 역시 명시돼 있지 않다”고 썼다. 합의 내용이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지 법적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재단 설립 및 일본 정부 출연과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무 이행의 시기ㆍ방법ㆍ불이행의 책임이 정해지지 않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뿐이다”고 판단했다. 합의에 ‘해야 한다’는 법적 의무를 지시하는 표현이 전혀 없어서 합의 이후 화해ㆍ치유재단 설립이 합의의 법적 구속력을 따른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문제가 됐던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이나 ‘국제 사회의 비난ㆍ비판 자제’라는 표현 역시 양국의 법적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합의에서 근본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양국 공통의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고 ‘불가역적 해결’의 전제가 되는 합의 내용의 의미가 불분명한 점 등에 비춰 법적 관계를 만드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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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 “그간 고통과 상처…각하에 아쉬움 남아”
헌법재판소가 '한·일 위안부 합의' 헌법소원 선고에서 각하 결정을 내린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측 이동준 변호사(오른쪽)와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이 재판 결과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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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고 직후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측은 ”수년의 기다림에 대해 각하 결정이 났다“며 ”어르신들이 받은 상처를 더 어루만져줄 기회를 헌재가 다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민변 측은 “오늘 헌재 결정으로 정부가 합의 자체의 성격이나 효력을 고려해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으로 나가는 단초를 마련한 게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헌재 결정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을 존중합니다.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ㆍ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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