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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아시아초대석]"회계개혁, 국민 인정 못 받으면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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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 사태 국가적 망신

세계 최하위권 외국선 당연시

필리핀에도 밀려 태국과 동급

한국상황 맞는 이론·논리 필요

독립성 확대, 품질향상 이어야

회계사 '한솥밥'문화도 걸림돌

국제회계기준위원회 한국 몫

차기후보 탈락가능성…자리 뺏길수도

회계사 임무는 생산성 극대화

당장의 포퓰리즘 막아야

아시아경제

주인기 국제회계사연맹(IFAC) 회장 겸 연세대학교 교수.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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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조영주 자본시장부장, 정리= 문채석 기자]


"시장경제에선 모든 것이 가격과 품질로 이어진다. 가격은 올랐는데 품질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으면 큰 실패다. 정부의 회계 개혁 중 가격 인상은 스타트를 끊었고 품질이 관건이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모두가 원칙을 어겨도 회계사만은 지킨다는 사회적인 믿음을 얻을 수 있도록 모든 회계사의 윤리 수준이 높아져야 개혁이 성공할 것이다."


주인기 국제회계사연맹(IFAC) 회장은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연구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이같이 밝혔다.


주 회장은 "회계 개혁으로 감사인의 독립성은 확대해놓고 감사 품질은 그만큼 높이지 못하면 사회적으로 큰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3년 뒤에도 지금처럼 회계 투명성 순위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무른다면 정말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우조선해양 회계 부정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 이후 국가와 사회가 회계 투명성을 높이라고 준 기회인 만큼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회계투명성 꼴찌권…외국에서 당연시"=주 회장은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가 세계 꼴찌 수준인 것도 심각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 어느 나라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조사마다 다르지만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회계 투명성은 30개국을 조사하면 29위, 60개국을 조사하면 59위 수준에 머물렀다.


그는 "만약 미국, 싱가포르, 노르웨이 등의 회계 투명성이 60개국 중 59위면 반드시 다른 나라가 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시 심층 조사를 하겠지만, 한국의 경우 결과가 이상하니 다시 조사해보자는 의견이 나온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한국이 60개국 중 59위라는 결과를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주 회장은 "조사 결과가 잘못됐으니 우리끼리 다시 조사해보자는 의견도 의미는 있지만, 그렇게만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앞으로 3년 안에 국제적인 조사에서 지금보다 회계 투명성이 개선됐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3년 뒤에도 60개국 중 59위, 30개국 중 29위라면 정말 희망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회계 개혁을 관(官)이 주도하고 있는 모습은 아쉽다는 의견이다. 관의 특성상 백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문책을 당하기 일쑤라, 실수해도 과감하게 품어주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업무·평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래서는 세계와의 회계 실력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주 회장은 "한국에는 회계사들 사이에서도 '한솥밥'을 먹은 이들과 끝까지 같이 가려는 문화가 있지만, 미국에선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업무 평가서를 들이밀더라. 처음엔 배신감도 들었다"면서 "이사회가 회장을 가차 없이 평가하고, 회의 의제와 자료 내용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미리 숙지한 뒤 곧바로 회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생산성을 만드는 체계가 구성원들의 몸에 배야 한다. 한국에선 이런 회의 준비 과정을 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생산성에서 외국과 얼마나 차이가 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회의서 필리버스터만 하는 韓, 필리핀에도 뒤진다"=주 회장은 한국 회계 외교에 대해 '국제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만 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필리버스터란 주로 소수파가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합법적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행위다. 국제회의에서 새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한국에 유리한 논리와 명분을 내밀어 상대를 끌어들이기는커녕, 다른 나라의 말만 듣고 필리버스터나 한 뒤 빈손으로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털어놨다.


그는 "승부는 영어 실력이 아니라 남이 못 찾은 아이디어를 얼마나 제시할 수 있느냐에서 갈린다. 아랍 국가들과 일본을 보면 회의 내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국제회의에선 유도 경기에서 '유효', '한판' 같은 점수를 매기듯 쓸모 있는 내용이었는지를 평가하는데, 침묵은 '금'이 아니라 '제로(0)'다. 국제회의엔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말하러 가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 아시아 회계 강국인 인도를 비롯한 싱가포르, 홍콩 등은 물론이고 필리핀, 말레이시아에도 밀리고 태국과는 동급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주 회장의 지적이다. 국제 회계 강국들은 평소에 개발도상국에 회계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의 봉사를 하면서 평판을 관리하는데, 한국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국제감사위원회, 국제윤리기준위원회 같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분야에만 '반짝' 관심을 두는 오랜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주 회장은 내년에 한국이 '3대 국제회계협의체' 중 하나인 IASB 위원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내년 6월에 IASB 한국 대표인 서정우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데,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이사회는 지난 9월 한국 정부가 추천한 IASB 위원 후보 교수에 탈락을 통지했다. 주 회장은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5위권이라고 해서 회계 무대에서 15위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꼬집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단골만 8개국이고 여기에 아시아 강국인 인도, 일본, 중국, 라틴아메리카의 종주국인 브라질 등까지 포함하면 이미 10자리를 넘어선다. 남은 자리를 두고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나이지리아, 케냐 등과 경쟁해야 한다. IASB 위원은 14인, IFAC는 18인으로 구성된다.


그는 "아무래도 서 위원이 맡았던 자리에 한국이 또 들어가기가 힘든 상황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쟁국 중 영어권 국가가 많아 결코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IASB와 IFAC, 국제공공부문회계기준위원회(IPSASB) 등의 멤버를 꾸준히 배출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계사들 활용해 포퓰리즘 막아야"=주 회장은 생산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회계인이 사회에서 존중을 받을수록 국가의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익을 내지 못하면 언젠가, 누군가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는 '제로섬' 법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회계사들은 철저하게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셈을 하는 프로이기 때문에 '포퓰리즘' 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회계사는 생산성과 비용 개념이 투철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결정 과정과 의견이 사회에 스며들 수 있도록 널리, 중히 써야 한다"며 "회계사들이 국가의 재정을 엄격하게 계산하고 결과를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이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치가 당장의 상황을 반영한 포퓰리즘 위주의 '현금주의'라면, 회계사들의 의사결정 과정은 미래의 수익과 비용까지 계산하는 '발생주의'에 비유할 수 있다"면서 "당장 현금이 쓰이지 않아도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전문가가 바로 회계사"라고 덧붙였다. 현금주의는 당장의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기법이고, 발생주의는 지금의 현금 수입 여부와 관계없이 수익과 비용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주 회장은 지금이라도 IFRS 도입 같은 '티가 잘 나는' 이슈가 터진 뒤에야 회계 외교에 관심을 두는 한국의 고질적인 습성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IFRS와 관계없이 평소에 우리 산업과 경제에 맞는 회계 논리와 명분을 개발해 세계 무대에 꾸준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라서 가치가 120인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80 밖에 인정을 못 받는 불리한 입장"이라며 "지식과 논리의 대부분을 PwC, KPMG, EY, 딜로이트 등 세계의 빅4 본사에서 수입하고 있어 한국 상황에 맞는 이론과 논리를 개발해 국제 무대에서 설득할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1997년 IASB 회의에 요르단과 함께 개발도상국 대표로 참석했을 때 안건 파악을 미처 다 하지 못했는데, 옆에 앉은 의장이 내 반대 방향으로 회의를 진행해 다른 참석자의 이야기를 끌어모아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난 적이 있다"며 "그때보다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리=문채석 기자, 사진=문호남 기자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문호남 기자 munon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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