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한 터키 경찰이 나를 불러세운다. 나는 배낭을 땅에 내려놓고 여권을 꺼낸다. 대한민국 여권 속지에는 커다란 이란 거주비자가 붙어있다. 공항 경찰은 경계하는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가방을 샅샅이 뒤진다. 속옷, 양말, 칫솔, 면도기밖에 없는 단출한 내 차림이다. 그래도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경찰이 묻는다. “어디 가는 거요?” “탁심(Taksim) 광장까지 걸어갑니다.” “족히 네 시간은 걸릴 텐데?” “알고 있습니다.” “차 조심하쇼.”
이란에서의 5년은 쌓여가는 앙금을 덜어내는 일이었다. 정교일치 국가답게 외국인이라도 이슬람공화국 방식을 따라야 했다. 여성은 외출할 때 머리에 히잡을 둘러야 했고, 남성도 더운 여름 반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접속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페르시아어 창부터 떴다. 퇴근할 때면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호프집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과 관조가 몸에 배어갔다. 안 되는 게 많으니까 하루 빨리 포기하는 수밖에.
쌓인 침전물을 덜려면 돌파구가 필요했다. 두세 달에 한 번씩 무작정 짐을 꾸려 밤도깨비 여행을 떠났다. 주말을 이용해 하루이틀 이웃나라에서 묵고 돌아오는 식이다. 잠깐이라도 다른 공기를 쐬면서 생맥주 한잔을 털어넣으면 없던 힘이 생겼다. 다행히 이란 서쪽에는 터키가 있었고 북쪽에는 아제르바이잔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가 있었다. 같은 이슬람 문화권이라도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각이었다. 국가별로 지향하는 가치도 달라 보였다.
이란은 헌법으로 종교와 정치를 묶어놨다. 종교가 정치고, 정치가 종교다. 반면 옆 나라 터키는 헌법상 종교와 정치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있다. 거창한 말로 세속주의(secularism)다. 많은 국민이 무슬림이지만 국가가 나서서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세속주의 국가답게 이스탄불 신시가지에는 탁심 광장을 중심으로 수많은 맥줏집이 늘어서 있다. 숙소에 도착하면 짐을 풀고 터키 맥주 ‘에페스(Efes)’부터 한잔 들이킬 생각이었다. 이란에서 쌓인 응어리를 덜어내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에페스를 떠올리며 하나둘 발걸음을 옮겼다.
걷다가 허름한 구멍가게에 들러 물을 한 병 샀다. 허겁지겁 목을 축이는데 옆에 있는 이발소에 눈이 닿았다. 때마침 머리는 덥수룩했다. 용기를 내 문을 열자 터키 이발사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벽에 붙은 사진 하나를 고르고 눈을 감았다. 사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동안 의존했던 세계관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내게 중동은 하나의 관념이었고, 아랍과 동의어였다. 알고보니 중동에도 다양한 삶의 모습과 정체성이 존재했다.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한국의 정체성을 가진 세계시민이라고 대답하겠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단호히 ‘노’라고 말하겠다. 마찬가지다. 내가 무심코 중동(Middle East)으로 묶어버린 공간에는 페르시아인, 튀르크인, 아랍인, 유대인 그리고 쿠르드인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통념을 의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기다. 걷다보면 차를 탈 때 지나쳤던 사람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세상은 넓고 걸을 곳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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