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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이춘재 잡은 ‘DNA법’, 내년부터 없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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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헌결정으로 연말까지 개정 못하면 효력 상실

지난 9월 희대의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33년 만에 특정됐다. 사건 당시 피해자의 속옷에서 검출된 DNA를 분석해 신원확인을 거친 결과였다. 검찰은 수형자의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치하는 정보를 찾았고, 경찰은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처럼 수사기관이 수십년이 지나서도 수집된 신원정보를 이용할 수 있던 것은 2010년부터 시행된 ‘DNA법’(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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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0일 헌재가 ‘DNA 채취 헌법불합치’로 결정을 내리자 9월 4일 민주노총 등 사회단체 회원들이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춘재 잡은 ‘DNA법’, 효력 상실될 처지

화성사건의 용의자를 잡는데 큰 역할을 했던 ‘DNA법’이 앞으로 보름 뒤면 효력을 다해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DNA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하지만, 국회 논의가 부진한 탓이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DNA법은 오는 1월1일로 효력이 상실될 전망이다. 현행 DNA법은 강력 범죄의 수감자나 구속 피의자의 DNA를 채취해 보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당사자 동의나 법원 영장을 거쳐 채취할 수 있으며, 수집된 정보는 DNA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DNA법은 사건사고를 수사하고 예방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DNA법이 제정된 2010년부터 지난 7월까지 수집된 DNA 정보는 17만6960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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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합뉴스


◆의견 진술 절차 등 부족으로 ‘인권침해’ 지적

그러나 DNA법이 제정된 뒤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DNA 채취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견 진술이나 불복 절차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채취된 DNA는 형이 확정된 경우 대검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관리되는데, 재심으로 무죄나 면소 등의 판결을 받거나 당사자가 사망하지 않는 한 삭제되지 않고 보존된다. DNA 채취 대상은 법 제정 이후 수감된 수형자뿐 아니라 그 이전에 수감된 기결수까지 소급 적용됐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산하 노조원들은 ‘DNA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헌재는 지난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DNA를 채취하는 자체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수사나 범죄의 예방효과에 비해 개인의 신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공익보다 작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 검찰이 수사를 목적으로 채취한 DNA는 대부분 영장 없이 개인 동의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바른미래당 채의배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검찰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채취한 DNA 16만6656건 가운데 영장으로 채취가 이뤄진 것은 1044건으로 1% 수준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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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연합뉴스


◆연말까지 관련 조항 개정해야…국회 논의 미진

헌재는 DNA 채취에 대한 영장 청구 단계에서 당사자 의견을 확인하는 절차가 명문화되지 않은 점, 소명자료를 내도 판사가 영장 발부 여부에 결정할 절차상의 담보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다만 위헌 결정에 따른 법적 공백을 고려해 오는 12월31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하도록 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개정 논의는 1년이 넘도록 미진한 상태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지난해 10월 영장 단계에서 대상자의 구두·서면 의견 진술 기회를 제공하고, 영장 발부 후 적부심사 청구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이밖에도 관련법안 4개가 발의됐지만 소관위에 접수된 뒤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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