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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문화중독자의 야간비행]만들어진 슈퍼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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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은 영웅서사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영웅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가상과 실재가 뒤섞인 존재들이 영웅의 외피를 하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상징과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스트의 지지를 방패 삼아 전쟁을 일으킨다. 배트맨은 슈퍼히어로라는 영웅신화의 현대적 상징으로 극장가를 점령한다. 모두 대중의 지지하에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향신문

슈퍼히어로의 등장은 세계대전 및 냉전시대와 맥을 같이한다.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자경단에 가까운 미국산 슈퍼히어로는 현대문화의 대체물로 소비한다. 하지만 슈퍼히어로의 초능력은 체제모순보다는 악으로 설정한 특정 세력의 대항마로서만 사용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냉전시대 이후 슈퍼히어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상으로 탈바꿈한다.

2019년 화제의 영화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였다. 미국 타임지는 “데이트하지 못한 슬픈 남자가 킬러 히어로가 되는 영화, 역겹다”는 의견과 함께 100점 만점에 20점이라는 평점을 남긴다. 정신질환자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설정은 배트맨류의 영웅서사와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계단 위에서 춤을 추던 조커의 모습은 가난과 차별이라는 계급사회의 거울이라는 공감대를 일으킨다.

제임스 본드는 어떤가. 국가와 인종 간의 갈등을 선과 악의 구도로만 설정하는 007시리즈는 비판의 여지가 적지 않다. 2007년 파리에서 열린 ‘007 학술대회’에서는 대영제국 해체를 경험한 영국인에게 대리만족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련 붕괴 이후 007은 새로운 적을 찾아 나선다. 그는 영화 <007 네버 다이>에서는 미디어재벌과, <007 언리미티드>에서는 석유재벌과 사투를 벌인다. 9·11 이후에는 국제테러조직이 등장한다.

2003년 한국에서 개봉한 <007 어나더 데이>는 개봉 전부터 상영반대여론에 휩싸인다. 이는 동남아시아의 물소가 등장하는 한국 농촌, 어색한 한국말투, 불교비하를 포함하여 한반도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찬 영화로 추락한다. 만약 영화 <기생충>의 무대가 영국 런던의 빈민가였다면, 귀족계급에 대한 냉소가 대사에 포함되었다면, 이를 서양문화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하려는 여론이 등장했을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정치적 선전물로 활용했던 007 시리즈는 영화사의 유물로 남을 상황에 처해 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광고물로 내세운 스파이 영웅서사의 말년은 씁쓸한 여운만이 감돈다. 제임스 본드는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난세의 영웅일까, 아니면 대영박물관을 가득 채운 수탈문화재처럼 제국의 전성시대를 그리워하는 살인병기에 불과할까.

배트맨과 007이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슈퍼히어로라면 일본에는 철완 아톰이 존재한다. 일본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 아톰은 미래도시에서 지구를 지키려고 분투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아톰서사에는 파시즘에 심취했던 2차대전 패전국의 재건이라는 염원이 녹아 있다. 10만 마력과 7가지 초능력을 겸비한 아톰은 가전제품 개발에 몰두했던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할리우드 관계자는 마블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시리즈의 필수 요건은 대중과의 소통이 가능한 캐릭터 구축이라고 언급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슈퍼히어로물이 대중문화의 전달자로 등장할 것이다. 문화종속의 치명적인 도구인 영어를 구사하는 슈퍼히어로 시리즈의 재탕현상은 살아 숨쉬는 영웅이 사라진 현실을 설명해준다. 이제 배트맨과 007을 능가할 만한 실재 영웅은 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어요?” 한국영화 <1987>에 나오는 연희(김태리 역)의 대사이다. 진짜 세상은 슈퍼히어로의 외침과 주먹질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 곁의 작은 이웃들의 용기와 실천이 혼탁한 세상에 숨결을 불어넣고 빛을 내린다. 그들이 진정한 21세기의 슈퍼히어로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독서인간의 서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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