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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선거제 개혁

'예산안 수정안' 맞불 놨지만… 與 밀어붙이기에 맥 못쓴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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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협의체가 제출한 예산안, 한국당 반발 속 상정 20여분만에 가결
한국당 예산안 수정안과 예산부수법안 수정안 제출하며 지연 전략 폈지만 실패
文의장, 제안설명 생략하고 토론 종결로 예산안 속전속결 처리에 맥 못써
한국당, 선거법·공수처법 저지 전선 비상

10일 밤 더불어민주당이 군소정당들과 만든 '4+1' 협의체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은 자유한국당의 강한 반대에도 국회 본회의 상정 30분도 되지 않아 가결됐다. 한국당은 예산안 의결을 막기 위해 예산안 수정안과 일부 예산부수법안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의 의사 진행을 막지 못했다. 문 의장이 한국당 수정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생략하고 침묵 시위를 벌이는 한국당 의원의 토론을 종결시키면서 한국당의 예산안 처리 저지 전략은 맥없이 무너졌다. 이에 따라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정당들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을 밀어붙일 경우에도 한국당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날 밤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친여(親與) 성향 군소 정당들과 만든 4+1 협의체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했다. 한국당은 자체 예산안 수정안을 제출하며 4+1 예산안 수정안 저지에 나섰다. 문 의장은 이날 밤 8시39분쯤 본회의에 4+1 수정안과 한국당의 수정안을 동시에 상정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은 원안에 대한 제안설명 이후 수정안 별로 제안설명을 해야 한다. 제안 설명은 10분 이상 보장하도록 돼 있다. 또 원안과 일괄해서 15분 이내에 토론도 해야 한다. 표결도 수정안이 여러 건 있을 때에는 가장 늦게 제출된 수정안부터 표결한다. 이런 규정 때문에 한국당의 수정안 제출 전략이 먹혀들지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한국당의 계산은 힘없이 무너졌다. 문 의장이 "제안 설명은 의석 단말기의 회의 자료로 대체하겠다"며 생략하며 의사진행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것이다. 한국당은 100여건의 수정안에 대한 무제한 제안설명을 통해 시간을 끌어 사실상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같은 효과를 내려 했지만 문 의장은 제안 설명을 생략해 이런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문 의장은 그러고는 "토론 신청이 있으므로 토론을 듣겠다"며 한국당 조경태 의원을 단상으로 불러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은 "왜 제안설명을 생략하느냐"고 항의했지만 문 의장은 "과거 관행을 다 뒤져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토론자로 단상에 나온 조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침묵 시위를 했다. 문 의장은 조 의원에게 "토론을 하라"고 수 차례 재촉했고, 10여분을 기다린 뒤 안건 상정 20여분 만인 9시1분쯤 토론 종결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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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10일 밤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상정하자 한국당 의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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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의장은 이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당 수정안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인 '변화와 혁신' 소속 지상욱 의원이 토론을 신청했으나, 문 의장은 토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곧바로 홍 부총리가 단상에 나와 "정부는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이종배 의원 등 108인에 의한 수정안(한국당 예산안)에 정부 원안보다 증액된 부분 및 새 비목이 설치된 부분에 대하여 부동의한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의 '부동의' 의견을 확인한 문 의장은 한국당 수정안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지 않고 곧바로 4+1 협의체 소속 의원 162명이 제출한 예산안 수정안을 상정했다. 이 안에 대해 홍 부총리는 "정부 원안보다 증액된 부분 및 새 비목이 설치된 부분에 이의가 없다"며 동의 입장을 밝혔다. 이에 문 의장은 곧바로 표결에 들어가 재석의원 162인 중 찬성 156인, 반대 3인, 기권 3인으로 '4+1' 예산안이 가결됐다. 한국당은 이번엔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이미 예산안 강행처리는 완료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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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2020년 예산안이 통과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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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결위 위원장인 한국당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예산안이 처리된 뒤 "총체적인 불법의 결정판"이라며 "오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처리 순서를 앞당기고 수정 동의안조차 순서를 바꿔 민주당 안을 먼저 표결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이 총동원됐다"고 반발했다. 지상욱 의원은 "4+1 협의체가 낸 수정안에 반대 토론을 신청했지만, 토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문 의장이 토론을 종결했다"며 "오늘의 국회 의사 진행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폭거로 4+1 예산안 수정안은 무효"라고 했다.

이날 예산안 처리 과정을 지켜본 야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의 예고편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도 수정안을 무제한으로 발의하는 방법으로 처리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그런데 이날 그 전략이 맥없이 무너졌다. 다만 예산안과 달리 일반 법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방식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필리버스터도 회기가 종료되면 해당 안건에 대해 다음 회기에서 곧바로 표결에 들어간다.

이 때문에 여당은 나흘짜리 임시국회를 연속으로 열어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을 잇달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걸면 한차례 나흘짜리 회기를 끝낸 뒤 선거법을 처리하고, 다음 회기에 공수처법을 상정한다는 것이다. 한국당이 공수처법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걸면, 다시 임시국회를 열어 공수처법을 처리하고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상정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두 세 번 '쪼개기 임시국회'를 열면 패스트트랙에 오른 네 법안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게 여권의 계산이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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