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회장이 대우개발(현 대우건설)을 설립한 건 해외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당시 종합상사 부문 중심이었던 대우가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선 건설업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1975년부터 대우개발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해외건설 시장에 뛰어들었다. 건설 후발주자였던 대우건설이 미지의 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무엇보다 김 전 회장은 1970년대 말 ‘중동 붐’이 불면서 건설 발주가 급증했던 중동 대신 역발상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로 눈을 돌렸다. 사회주의국가였던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를 전략지역으로 정하고 신시장 개척에 나섰다. 리비아, 나이지리아, 알제리 등과는 아직 국교도 맺어지기 전이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곳에 눈을 돌리며 그의 개척자 기질을 발휘한 것이다.
지난 2013년 4월 25일 베트남 하노이 대우호텔에서 열린 조선일보·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하노이=오종찬 기자 |
◇리비아·수단·나이지리아 진출, 대우건설 활약의 밑뿌리
대우는 당시 이탈리아 건설사가 공사하다 포기하고 떠난 리비아 우조비행장 건설프로젝트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의 신뢰를 얻은 이후 주택·병원·호텔·도로·플랜트·항만 등 114억달러어치 공사 200여건을 모조리 수주했다. 김 전 회장의 대담한 사업방식과 추진력 등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수단 진출 사례도 극적이었다. 1976년 대우의 해외지사 정보망은 수단의 고위관리가 방한을 희망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우는 비밀리에 그를 초청해 수단과 상거래와 수교를 트는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당시 수단은 군정이 들어서면서 외국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당시 소련, 중공 등 사회주의 국가와 경제관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일단 수단으로 향한 김 전 회장은 장관급과의 파티에서 수단에서 못 파는 원면을 한국 측이 사고, 대우는 홍해 연변의 위락시설․철도시설·방직공장의 건설에 참여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제안했다. 두 나라 사이에 영사관계를 수립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김 전 회장의 단독 행동에 대해 정부 측 대표는 매우 놀랐다고 한다. "결과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왜 보따리부터 털어놓았느냐"는 힐책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튿날 니메이리 수단 대통령이 김 전 회장과의 면담을 희망했고, 결국 니메이리 대통령은 한국과 수단과의 영사관계 수립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리비아, 수단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알제리 모로코 등에서도 김 전 회장과 대우건설의 활약이 굳건한 밑뿌리가 되기도 했다. 1978년 우물사업을 통해 진출한 나이지리아에선 지난 9월 액화천연가스(LNG) 생산플랜트의 설계·구매·시공(EPC) 원청 우선협상 대상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글로벌 건설사들이 독식한 LNG 플랜트시장에서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 원청 지위를 확보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만 대우건설은 70개의 공사를 수행했다.
◇김우중 ‘유산’ 베트남 신도시사업…트럼프와의 인연도
대우건설이 현재 베트남 하노이에서 펼치는 ‘스타레이크’ 신도시 개발 사업도 김우중 전 회장의 유산이다. 대우건설은 1996년 하노이에 경기도 분당이나 일산 같은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베트남의 미래 경제성장 가능성을 미리 내다본 것이다. 1998년 대우그룹 해체와 2008년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건설경기 침체로 미뤄졌지만, 2016년 착공에 들어가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하노이 북서쪽에 여의도 면적의 3분의 2에 이르는 207만6000㎡ 면적의 신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제안부터 금융, 시공, 분양까지 대우건설이 맡았다. 이른바 베트남의 ‘강남 개발’이라고 불린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이 해체 이후 베트남에 체류하며 글로벌 청년 사업가 양성사업(GYBM)을 펼쳤을 정도로 이 나라에 애정을 가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인연도 김 전 회장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일화다. 1997년 미국 현지법인인 DADI(대우 아메리카 디벨롭먼트 NY Inc)를 통해 트럼프와 맨해튼 유엔본부 근처에 초고층 주거빌딩 트럼프월드타워를 세우기로 하면서 맺어진 인연은 국내 주상복합시설인 트럼프월드로까지 이어졌다. 대우건설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트럼프 이름을 딴 ‘트럼프월드’를 지었다. 당시 국내 어느 건설사도 생각하지 않았던 ‘협업’이다.
◇세계경영 내세운 ‘인재사관학교’
대우건설이 CEO 사관학교로 불리는 것도 김우중 회장의 영향이 강하다. 김 전 회장의 ‘세계 경영’으로 해외시장에 일찍 뛰어들었고 대형 사업을 경험을 통해 글로벌 건설업계의 생리를 일찍 알게 된 경영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은 그룹 해체 이후 워크아웃 위기까지 갔지만, 시공능력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며 "업계에서 끈기, 의지 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고 말해다. 2010년 안팎쯤에는 시공능력 평가 100위 이내 건설업계 CEO 중 10여명이 대우건설 출신이기도 했다.
김 전 회장의 유산인 대우건설은 여전히 시공능력평가 5위권을 유지하며 활발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 전 회장과 대우건설을 처음 세웠던 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은 대우건설 창사 30주년 사사를 통해 "서울의 관문 서울역 앞에 우뚝 솟은 24층 4만평 규모의 대우센터는 이때 한참 피어오르는 대우를 상징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건물에 대우가족이 꽉 차는 것이 내 목표다라고 준공 당시 김우중 회장이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고 말했다. 한때지만 세계 경영을 통해 김 전 회장의 꿈은 이뤄진 셈이다.
이진혁 기자(kinoe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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