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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4 (화)

이슈 미술의 세계

영화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가족으로 인한 고통, 가족 통해 치유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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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윤희에게> 속 장면들. 딸과 단둘이 사는 윤희(위 사진)가 딸 새봄(아래 사진 오른쪽)과 함께 일본 오타루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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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를 본 관객은 알겠지만, 사실 이번 영화의 계절적 배경은 가을이다. 엘사가 통치하는 왕국 아렌델은 아름답게 물든 단풍으로 가득하다. <겨울왕국2>보다 진짜 ‘겨울왕국’이라 할 곳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 지난 14일 개봉한 <윤희에게>다.

딸이 엿본 엄마 옛 친구 편지 계기

모녀 여행 속 소중한 사랑 깨우쳐

‘윤희들’에게 응원 보내며 마무리


<윤희에게>는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 딸 새봄(김소혜)과 단둘이 사는 윤희(김희애)가 딸과 함께 일본 오타루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홋카이도 서부 작은 도시 오타루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새봄은 윤희의 옛 친구 쥰(나카무라 유코)이 부친 편지를 몰래 보게 되고, 쥰이 사는 오타루로 여행을 떠나자고 권한다.

장편 연출 데뷔작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로 국내외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감독 임대형(33)은 <윤희에게>에서 한층 더 섬세해진 연출을 선보인다. 영화는 쥰의 편지로 시작된다. 지난 1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임 감독은 “<윤희에게>는 새봄의 시선에서 엄마를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며 “각자가 가진 편견, 선입견들을 점점 하나씩 깨 나가는 영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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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를 각본·연출한 임대형 감독 이상훈 선임기자


영화는 윤희와 쥰이 각각 사는 한국과 일본을 교차로 보여주며 전개된다. 임 감독은 일본을 택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 사회가 큰 차이가 있지만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 남성 중심적 시스템이 공고한 국가, 마이너에 대한 혐오나 차별이 심한 사회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도 있다”며 “쥰은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가 일본인인 한·일 혼혈이다. 한국에 오면 일본인, 일본 가면 한국인 취급을 받는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영화의 끝도 편지로 마무리된다. 영화 자체가 그 시절 힘든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힘겹게 살고 있는 ‘윤희들’에게 보내는 응원 편지인 셈이다. 그러나 편지를 당사자끼리 주고받는 건 아니다. 딸이나 고모 등 가족을 통해 소통 계기를 마련한다. 임 감독은 “윤희도, 쥰도 편지를 썼다고 보낼 사람은 아니다. 헤어진 지 20년이 흘렀고, 서로의 삶을 멀리서 응원하지만 쉽사리 다가가기 힘들 것”이라며 “둘을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을 통해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이 영화는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은 시간을 가족으로 치유받는 이야기”라고 했다.

기차·달·담배 등 다양한 상징 배치

‘겪어온 삶’ 곱씹을 만한 대사 담아

“관객들이 어떻게 보든 모두 정답”


<윤희에게>에는 기차·달·담배 등 다양한 메타포와 의미를 곱씹을 만한 대사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임 감독은 “관객이 어떻게 보시든 다 정답”이라며 “달의 경우 시간순서를 나타내기도 한다. 달이 차오르기도 하고 다시 사라지기도 하지 않나. 그런 과정이 삶이랑 닮아 있는 것 같고. 사랑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윤희와 쥰의 삶을 보려는 영화라 이런 메타포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검은 밤하늘과 하얀 달, 하얀 눈과 빨간 우체통 등 섬세한 미장센도 돋보인다. 임 감독은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 조금 더 다채로워진다. 윤희가 점점 색을 입듯 집 안 색감이나 인물들 의상도 무채색에서 점점 원색이 들어가는 방식으로 하자고 의상·분장·미술감독과 상의했다”고 했다. 특히 아파트 복도 동작감지등은 임 감독의 섬세함을 잘 나타낸다. 그는 “인물들이 긴 시간을 망설이고 기다린다. 이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동작감지등을 떠올렸다. 귤 껍질을 벗기는 장면도 있는데, 오랫동안 벗기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하얀 껍질이 거의 안 남은 이미지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충남 금산 출신인 임 감독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았다. 사회학 전공으로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영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졌고, 대학도 영화 관련 학과로 편입했다. 그는 “대학 신입생 때 좋은 한국영화들이 쏟아졌다. 그때부터 서울아트시네마 같은 여러 극장들을 다니며 예술영화를 봤고,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한 그였지만 영화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임 감독은 “학부 2학년을 마치고 편입을 했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영화를 필름으로 찍었는데 매거진(필름을 넣어두는 용기)이 빛에 노출돼 날아가는 등 불운한 일이 많았다. ‘나랑 영화랑 안 맞을 수 있겠다’ 생각해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고향에서도 글 쓰는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임 감독은 “소설이든 대본이든 글을 쓰지 않으면 불안했다. 쓰다보니 대본 형태로만 나오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를 한 공모전에 보냈고, 이정향 감독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시 용기를 얻은 그는 학교로 복귀했고, 단편영화 <레몬타임> <만일의 세계>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졸업한 뒤 만든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받았다. 부산영화제 지원을 받은 <윤희에게>는 올해 부산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그는 “사실 그때(2016년)까지만 해도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편이었다.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목표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살지 않았다. 다만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다행히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고 말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영화 <르 아브르>(2011)를 좋아한다는 임 감독은 “영화를 찍는 과정은 제 부족함과 대면하는 과정”이라며 “매번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고 생각한다. 전작보다 반 보 나가다보면 나중에는 (관객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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