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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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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우주` 132억원 낙찰…한국미술 빅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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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 작품이 낙찰되는 장면. [사진 제공 = 크리스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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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점으로 소용돌이치면서 퍼져나가는 푸른 점화가 한국 미술품 사상 첫 100억원 시대를 열며 국내 미술계 자존심을 세웠다.

한국 추상화 선구자인 김환기(1913~1974) 대작 '우주(Universe) 05-IV-71 #200'가 23일(현지시간) 홍콩 컨벤션전시센터 그랜드홀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131억 9000만 원(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면서 국내 미술품 경매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85억 3000만 원에 팔린 김환기 붉은 점화 '3-Ⅱ-72 #220' 기록을 1년 6개월 만에 경신한 것이다. '김환기 만이 김환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국내 미술품 경매 통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다. 현재 한국 미술품 경매가 '톱 10'에는 9위 이중섭 '소'를 제외하고 모두 김환기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날 10여분 동안 33번의 치열한 경합 끝에 시작가 60억 원(4000만 홍콩달러)의 2배가 넘는 금액에 70대 재미동포 사업가에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환기 작품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 애호가로 구매 수수료를 포함하면 153억 4930만 원(1억195만 홍콩달러)을 내고 '우주'를 품게 된다.

이날 크리스티 경매 측은 "김환기의 예술을 향한 집념 어린 열정과 헌신의 결과물인 '우주'가 한국을 넘어 근대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다"며 "이번 기록 경신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김환기 화백의 작품이 주류 세계 미술 시장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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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김마태 박사의 뉴욕 자택 거실에 걸린 `우주` 앞에 앉은 김환기. [사진 제공 = 환기미술관, 크리스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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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린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20세기&동시대 미술 부문 부회장이 "오늘 기념비적 기록을 남긴 '우주' 만이 김환기 기록을 다시 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을 정도로 한국 미술사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가로 세로 254cm에 달하며 작가의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 폭화다. 두 화면은 각각 해와 달, 빛과 그림자, 남성과 여성, 음양 등을 의미한다. 인생을 이끄는 모순과 동시에 상생 관계에 놓인 이원적 존재를 뜻하며, 궁극적으로 우주의 핵심 기운을 상징한다.

박미정 환기미술관장은 "작가가 뉴욕에 머물던 시기(1963~1974)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남긴 역작으로 예술성과 희귀성을 갖고 있다"며 "작가는 고향인 신안 바다와 그리운 고국 하늘과 사람들, 삼라만상을 생각하면서 푸른 점을 찍은 후 원으로 둘러싸면서 자연의 본질을 추상화로 압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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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 홍콩 경매 프리뷰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김환기 푸른 점화 '우주(Universe) 05-IV-71 #200'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크리스티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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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1971년 뉴욕 포인트덱스터 갤러리 개인전에 걸었던 작품이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는 일기를 통해 "종일 캔버스 틀을 두 개 만들었다", "두 점 완성. 전자와 후자. 연결시켜 한 폭 작품이 된다. 후자가 좌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뉴욕에서 러시아 출신 색채 추상화 거장 마크 로스코(1903~1970), 미국 모노크롬 회화 대가 바넷 뉴먼(1905~1970)에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색조와 농담의 다양성과 번짐을 통제하는 '우주'를 완성했다. 숨쉬는 듯한 점들에 의해 창조된 신비롭고 명상적인 분위기는 우주의 에너지와 깊이를 묘사하면서, 무한한 공간감과 평온함을 선사한다.

점화는 기법상 테이블 위에 놓인 캔버스를 내려다보면서 긴 시간 동안 꼿꼿이 선 자세로 수묵화 세필을 쥐고 농담과 번짐을 통제하며 한 점, 한 점 찍어 나가야만 한다. 고통스러운 노동집약적 과정으로 척추 신경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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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뉴욕 작업실에서, 1971년


당시 그의 병을 치료했던 외과 의학박사 김마태(한국명 김정준·91)와 그의 아내 전재금 여사가 '우주'를 직접 구입해 40년 이상 소장해왔다. 김 박사는 1951년 부산 피난시절 작가를 만나 뉴욕행을 권했으며 화가가 타계한 1974년까지 헌신적으로 후원했다. 2004년에는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 '우주'를 대여해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감상하도록 했다.

1971년 이 그림이 완성된 후 처음 경매에 나와 단숨에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 경매 성적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국내 미술품 위상을 높였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에 비해 저평가됐던 한국 미술품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도 마련됐다.

정준모 한국미술품감정센터 대표는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부자들의 머니 게임 수단이라는 부정적 시각 때문에 한국 미술이 국력에 비해 저평가돼 있었다"면서 "이번 경매 성과가 한국 현대 미술의 위상을 높여주고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경매 성과로 정부의 세제 강화와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미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홍콩의 불안한 정치상황과 경기 침체에도 한국 작가가 100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김환기 '우주'가 시작가보다 2배 넘게 팔렸다는 것은 한국 만의 작가를 넘어서 국제 시장에서 인정받았는 의미도 있다. 올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국내 미술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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