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래동서 송좡 작가와 아시아 창작촌 교류전 ‘송좡×영등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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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광장의 이미지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느냐고? 그런 작품은 중국 어느 미술관에서든 걸리기 힘들어요.”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에서 대안공간 ‘카체’를 운영하는 기획자 우샤오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 공간에서 정부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을 전시할 때는 공안이 들어와 작품을 철거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규제의 잣대가 뭔지도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적인 거장 아이웨이웨이의 비디오 영상 전시를 할 때는 상영 도중 전시가 무단 철거되기도 했다. 798관리위원회는 수시로 전시 내용을 점검해 철거 또는 수정을 지시한다. “전시 때마다 널리 알리지 않고 알음알음 에스엔에스로 연락해서 망을 보면서 감상하는 게 카체 공간의 특징”이라면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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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샤오준은 지난 8일, 대안공간 ‘카체’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막한 한국의 미디어아티스트 유비호 작가와 박천남 기획자, 동료 운영자 겸 작가인 푸레이와 함께 집담회를 열었다. 천안문 광장을 배경으로 찍어 전시 중인 유 작가의 신작 영상물 이야기를 들은 뒤 우샤오준은 기다렸다는 듯 중국 현지 대안공간 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에 관해 열변을 토했다.
중국 당국이 내린 한한령(한류 금지령)의 빗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한·중 민간 예술가들 사이에서 한한령은 더는 넘지 못할 장벽이 아니다. 거대 자본의 잠식과 젠트리피케이션, 생활고, 그보다 더 심각한 검열과 활동 규제의 문제까지 절박하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한·중 미술인들의 풀뿌리 연대가 최근 도드라진 흐름으로 떠오른다.
30일까지 열리는 유비호 작가의 베이징 798전시는 이런 흐름에서 의미를 평가할 수 있는 전시다. 유 작가의 작품은 이달 초 베이징 시내 천안문과 왕푸징 거리 등에서 현지 행인들에게 거울을 쥐여주고 빛을 비추게 하는 현장 작업을 찍은 <내 마음속의 은하수>란 동영상이다. 우샤오준은 “우리 공간은 작품 창작 전시가 아니라 중국 현실과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끄집어내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며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의 존재를 눈을 쏘는 빛으로 보여주는 유 작가의 작업이 우리 공간의 취지와 적절하게 들어맞는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최근 창작미술촌에서 상업미술 지구로 변질된 베이징의 대표적인 예술특구인 798의 대안공간에서 현지 진보 미술인들과 교감하는 장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를 가진다. 베이징 도심에서 시민들과 직접 만나 함께 미디어 작품을 만들면서 현장 작업을 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카체’는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역사와 현대미술을 다룬 기획전을 하거나 추진 중이고, 문화대혁명과 대약진운동 등 중국의 굴절된 현대사 속에서 사라져간 지식인들의 존재를 추적하는 작업도 벌여왔다. 아울러 국제기획전 ‘무브 온 아시아’에 참여하며 동아시아 다른 나라 작가들과 기억의 연대 틀을 마련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있어 국내 소장 미술인들과의 교류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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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3일엔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협회장 전영일 작가)를 비롯한 국내 소장 작가들과 베이징시 송좡 지역 창작촌 작가가 함께하는 아시아 창작촌 교류전 ‘송좡×영등포’전이 서울 문래동 철공소 예술촌 대안예술공간 이포와 아츠스테이 문래1호점 지하 갤러리에서 성황리에 진행됐다. 특히 9일 개막행사에서 양국 작가들은 토론 심포지엄과 공연 퍼포먼스 등을 통해 작품에 대한 검열, 젠트리피케이션 등 작가촌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눴다. 문래 창작촌을 비롯한 영등포 지역 작가들은 철공소 운영자·장인들과 주민들이 자발적인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성한 경험을 들려줬고, 송좡 지역 작가들은 90년대 소수 작가가 생활 터전으로 입주하면서 시작된 창작촌이 최근 철저한 정부 주도 예술인촌으로 재편된 데 따른 상시적인 불안감과 창작의 압박감을 에둘러 이야기했다.
두 나라 창작촌 작가 30여명이 내놓은 그림, 설치, 조각 등의 작업은 수준이나 주제 등에서 편차도 있었지만 작업 방식이나 예술관의 기본적인 차이 또한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는 마당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박천남 기획자는 “70~80년대 정치적 억압기와 90년대 이후 예술 다원화 시기를 거친 한국의 미술계 상황이 현재 중국의 작가들에게 비슷한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글로벌화를 앞세워 자본의 상업 시장화가 가속되는 미술계 현실에서 두 나라 미술인들의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유하면서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이 더욱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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