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미니멀리즘 산업디자이너를 담은 `디터 람스`, `우먼 인 할리우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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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안 읽는 세대라고 해서 지적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영상을 제1매체로 정보를 습득하는 밀레니얼(1981년 ~ 2000년대 초반생) 이야기다. 이들이 다큐멘터리 소비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영화계와 각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공급을 늘려가고 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보에 따르면 올해 들어 22일까지 개봉한 다큐멘터리는 총 57편으로 전년 동기 47편에 비해 21% 많아졌다. 같은 기간 전체 영화 개봉 편수(비디오 등록정보 등 포함)는 1705편으로 전년 동기 1665편에 비해 2%가량 느는 데 그쳤다. 국내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는 5년 전인 2014년(1월 1일~11월 22일) 41편에 비해서도 비약적으로 확대됐다.
올해 기록영화 붐에는 항일 독립운동 소재 작품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제작된 영화들이 관객 발길을 붙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의 삶을 다룬 '김복동'(8만7000여 명), '1919 유관순'(6만2000여 명), '주전장'(4만여 명)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저예산 독립영화는 관객이 1만명만 들어도 상업영화에서 100만명을 모은 것과 유사한 인기를 끈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쳤던 이웃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도 관심을 모았다.
'교회오빠'는 스스로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은 데다가 갑작스럽게 모친이 사망하고, 아내는 혈액암 4기 진단을 받는 고(故) 이관희 집사의 투병기를 담았다. 믿을 수 없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신앙의 힘으로 끝까지 긍정하는 자세를 보여주며 약 11만명 관람객을 모았다. 전국에서 4만2000여 명이 본 '칠곡 가시나들'은 경상북도 칠곡군에 사는 평균 나이 86세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우는 내용을 담았다. 일제시대에 살아 우리글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주인공들이 자기 이름 석 자를 쓰게 되는 장면이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사건과 현상의 이면을 밝히는 폭로성 다큐멘터리 개봉도 증가세다. '우먼 인 할리우드'는 화려해 보이는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사실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있음을 보여준다. 188편의 영화 클립과 96인의 여성 배우·감독·작가 인터뷰를 통해 미국 연예산업 내 성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정적으로 호소하며 '토론토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이밖에도 4대강 사업을 비판한 '삽질', 사학비리를 고발한 '졸업'이 극장가에서 주목받았다.
아울러 예술이 무엇인지에 답하는 다큐멘터리가 극장가를 다채롭게 장식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전(展)'으로 35만명을 맞이한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인생을 비춘 영화 '호크니'가 대표 주자다. 방탄소년단 RM도 좋아한다는 작가 삶이 궁금했던 1만7000여 명 관객이 호기심을 충족해서 돌아갔다. 미니멀리즘 산업디자이너를 담은 '디터 람스', 현대 예술과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미술 전문학교를 다룬 '바우하우스', 세계적인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삶을 소묘한 '쿠엔틴 타란티노8' 등도 관련 분야 학도, 그리고 시네필(영화광)들과 만났다.
다큐멘터리는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늘면서 전성기를 누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각종 촬영기기 발달로 영화 제작이 이전보다 쉬워진 데다가 다큐멘터리 흥행작이 잇달아 탄생하며 해당 시장이 예전보다 커진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지금의 젊은 감독들은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사람들이라 주변의 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익숙하다"며 "'워낭소리'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빅히트 작품이 시장을 키운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텍스트보단 이미지로 정보를 습득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에듀테인먼트(교육+오락)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밀레니얼이 가장 선호하는 OTT 넷플릭스에서도 기록영화는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 'K팝의 모든 것' '왜 여성은 더 적게 받는가' '영원히 살 수 있을까' 등 흥미로운 주제를 풀어내는 '익스플레인 세계를 해설하다'는 시즌2까지 한국에 공개됐으며, 뇌과학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버전인 '뇌를 해설하다'도 나왔다. 넷플릭스 외에도 왓챠플레이, 아마존프라임 등이 개성 있는 다큐멘터리로 젊은 세대를 유혹하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는 남들이 하지 않는 마니아 취향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에 꽂힌다"고 설명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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