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 콜센터에서 상담사들이 고객의 상담전화를 받고 있는 모습. (본 사진은 기사내용과는 관련 없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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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상담원들이 회사와 단체로 교섭을 맺어 인건비를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이 가능할까. 만약 콜센터 상담원을 고용한 회사와 일감을 주는 회사가 다르다면, 이들의 노동조건은 누구와 협의해야 할까.
콜센터 전문기업 ‘한국고용정보’의 첫번째 노사 교섭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강원 춘천에 본사를 둔 한국고용정보는 국민카드·하이마트·LG전자 등 내로라하는 금융기관·대기업들의 고객 상담업무를 수행하는 국내 대표적인 콜센터 아웃소싱 기업이다. 회사는 필사적으로 임금 교섭을 회피하려고 하고, 노조는 부당노동행위를 주장하고, 덩달아 상담원 500여명의 고용불안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양자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고용정보 노동조합(서비스연맹 한국고용정보지회) 조합원들은 춘천시청 앞에서 ‘고용안정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회사가 지난달 물적분할 방식으로 서울에 새로 설립한 ‘KS한국고용정보’에 콜센터 운영 사업을 넘긴다고 한다”라며 “이 말은 춘천 상담사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춘천에 근무하는 상담원들은 계속 지주회사인 한국고용정보 소속으로 남아 콜센터 업무를 계속 하게 될 것”이라며 “오는 12월 도급을 준 대기업들과의 재계약도 신설 법인(KS고용정보)이 아닌 본사가 그대로 이어받기 때문에 콜센터 일감이 끊길 일은 없다”라고 했다.
▼경향신문 유튜브 <이런 경향> 콜센터 상담원 편 보기▼
문제는 상담원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에 대한 논의나 설명이, 노사의 공식 채널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에는 지난해 11월 노조가 처음 생겼다. 창사 20년만이었다. 춘천지역 콜센터 상담원 500여명 중 140여명이 가입돼 있다. 이 회사 상담원들은 지난 4월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과 만나 고객들의 폭언·갑질 등 상담원의 애환과 화장실도 순번을 정해서 가는 등의 노동 실태, 퇴직·이직이 잦은 업계의 속사정, 고객과 소통하는 ‘전문 상담원’으로서의 자부심 등을 이야기했던 바 있다.
노조는 올 초부터 기본급 10% 인상, 감정노동수당 5만원 신설, 근속수당 신설 등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12차례 열린 교섭 자리에서 줄곧 거부 입장을 고수해 왔다. 회사를 둘로 쪼개는 물적분할 건에 대해서도 사측은 “여러 사업부문을 지주회사 구조로 정리하고 전문성·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분할이지, 고용에 큰 영향이 있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조합원이 다수 가입된 춘천 센터만 고립시키기 위해 서울로 법인을 이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회사가 노조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불거진 면이 크다. 회사는 지난 7월 이후 아예 교섭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8월에는 노조가 점심시간 집회를 열자 사측에서 조합원 감사를 벌였는데, 고용노동부(중부지방고용노동청 강원지청)은 이를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한 행위”라며 노동조합법 위반으로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상태다. 지난 9월에는 사측 관계자가 조합원 정보를 파악하려 한 데 대해 손영환 노조 지회장이 항의하자 이를 취업규칙 위반(풍기문란)으로 보고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는 등 양측 간 징계 및 고발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지난 20일 콜센터 아웃소싱업체 한국고용정보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강원 춘천시청 앞에서 고용보장과 임금·단체협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비스연맹 한국고용정보지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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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콜센터 상담원들의 임금·처우 개선 논의는 안갯속이다. 콜센터 업계에서는 노동조합과 회사의 관계가 강대강으로 치달으며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계약수주에 매달려야 하는 아웃소싱 업계의 특성이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아웃소싱 업계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이같은 상황을 위탁사가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 응대 수요가 많은 국내 주요 은행·카드·유통사들은 한국고용정보 같은 회사에 콜센터 업무를 위탁하면서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한다. 이 때 신규입찰에 응하는 업체만 10여곳에 이른다. 사측 관계자는 “콜센터 아웃소싱 회사들의 상담원 임금수준은 일정 수준에 맞춰져 있다”라며 “우리만 임금 요구를 받아들여 원가에 반영시키면 입찰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낮은 단가를 유지하려고 사측이 임금요구안을 차일피일 미루자 노조는 지난 9월 이후 세 차례 파업을 했다. 회사 관계자는 “파업으로 인해 상담품질이 상당히 낮아졌고 이는 원청(위탁 준 회사)에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고 있다”라며 “아울러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상담원들의 일거리가 늘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손 지회장은 이에 대해 “회사의 단체교섭 회피로 인해 조합원·비조합원 간 갈등 소지까지 불거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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