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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대법원, “다큐 백년전쟁은 이승만·박정희 명예훼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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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은 엄격하게 심사해서는 안돼

백년전쟁 제작사 손 들어줘… 유튜브, 팟캐스트 표현의 자유 폭 넓어질 듯

헤럴드경제

대법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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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다루며 법정 공방으로 간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대법원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의 자유를 넓힌 판결로, 향후 유사 사례에도 같은 기준이 적용될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영한 시민방송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낸 제재조치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구체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심사한다면, 방송법의 취지 및 공정한 여론의 장을 형성하고자 하는 방송의 역할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 심사를 할 때는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백년전쟁 방송 내용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므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역사 다큐멘터리의 경우에는 방송의 균형성을 선거방송이나 보도방송과 같이 한 프로그램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나 관점에 대해 각각 동등한 정도의 기회를 기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며 “백년전쟁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인 점을 감안하면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결론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백년전쟁 내용은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등의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살펴볼 때 그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등 6명의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냈다. 조 대법관 등은 “백년전쟁은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을 취사선택해 방송내용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전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이 방송은 모욕적 표현으로 사자를 조롱하는 내용으로,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사자 명예존중을 규정한 심의규정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공영방송이 아닌 경우에는 역사적 평가를 다룬 내용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고 판결하면서 향후 유튜브나 팟캐스트 같은 시청자 참여용 방송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관계자는 “향후 동일한 쟁점 또는 유사한 사안에서 해석의 지침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민방송은 2013년 1~3월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등을 방송했다. 방통위는 편향된 내용과 저속한 표현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징계와 경고 처분을 내렸고, 시민방송은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시민방송이 일방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고, 항소심 판단도 같았다. 별도로 시민방송 제작진은 지난해 2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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