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방송 6년소송 끝 ‘파기환송’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비판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2013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한 것은 위법하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방통위 제재와 이를 적법하다고 판단한 1·2심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 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1일 시민방송 <아르티브이>(RTV)가 ‘백년전쟁’에 대한 방통위 제재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했다. 대법관 7명(김명수 대법원장, 김선수·김상환·김재형·노정희·민유숙·박정화 대법관)은 “‘백년전쟁’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 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관 12명 의견이 6 대 6으로 팽팽한 상황에서 마지막 결정을 한 김 대법원장의 선택으로 다수의견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백년전쟁’이 유료의 비지상파 채널로 방송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보다 완화된 심사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방송 내용의 신뢰도에 대한 기대나 사회적 영향력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백년전쟁’이 주류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의문을 제기해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공정성을 해칠 만큼 편향되지 않았다고 봤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역사적 사실이나 인물에 대한 후대 평가는 각자 가치관이나 역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역사적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며 “방송 전체의 내용과 취지를 볼 때 중요한 부분이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가 신문기사 등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표현 행위에 대한 행정제재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으니 자율심의체계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선수·김상환 대법관은 ‘국민의 역사 해석·표현에 대한 국가권력 개입의 한계와 정도’를 언급하며 “법원의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법관 6명(권순일·박상옥·안철상·이동원·이기택·조희대)은 “방송 자체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아 객관성을 상실했고 제작 의도와 상반된 의견은 소개하지 않아 공정성과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백년전쟁’은 진보 성향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2012년 제작했다. 이듬해 1~3월 아르티브이가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편과 ‘백년전쟁 프레이저 보고서’ 편을 각각 29회, 26회 방송했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을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그 후손들의 전쟁으로 보고 두 전 대통령의 공과 등을 다뤘다. 방통위는 그해 8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공정성, 객관성, 명예훼손 금지)을 위반했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 사실을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2014년 8월과 2015년 7월 1·2심 재판부는 방통위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결했다. 박 전 대통령 임기 중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 평가 없이 부정적인 사례와 평가만으로 구성하고, 제작 의도와 달리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의도적으로 배제해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지영 감독과 프로듀서 최아무개씨는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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