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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중국인도 홍콩 지지해야”…한·중·홍 대학생이 외친 ‘홍콩 시위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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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4·18 기념관 소극장에서 ‘홍콩 운동: 연대가 중요하다’ 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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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학생’.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토론회 책상에 낯선 이름표가 놓였다. 홍콩, 한국 학생과 나란히 앉은 중국인 유학생 ㄱ씨는 “대자보를 훼손하는 등 비문명적 행동을 저지른 중국 학생들을 대신해 사과를 전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재학중인ㄱ씨는 홍콩 학생들처럼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다른 중국 유학생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얼굴이 공개됐을 때 중국에 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ㄱ씨가 말했다. “중국 사람들도 언젠가 자유를 위해 일어날 거에요. 그날, 홍콩이 우리의 모범이 될 거에요.”

20일 저녁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홍콩 운동: 연대가 중요하다’ 공개 포럼이 열렸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주최한 이날 포럼에 한국과 홍콩, 중국 학생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5개월 넘게 이어지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한국 뿐 아니라 중국 학생들의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 포럼을 마련했다.

포럼은 긴장감 속에 시작됐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홍콩 시위를 둘러싼 한국인 학생과 중국인 학생 간 충돌이 이어졌다. 포럼 시작 직전에도 고려대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 현장에 있던 중국인 학생이 찾아와 실랑이를 벌이다 떠났다. 홍콩 학생들은 신분 노출을 우려해 검은 마스크를 쓰고 참여했다. 방명록의 성명, 전화번호란 등도 채우지 않았다. 한 홍콩 학생은 소극장으로 들어가다 발걸음을 돌려 방명록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걱정된다” 며 유일하게 적었던 e메일 주소를 보이지 않을 때까지 펜으로 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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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게시판에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작성한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대자보와 고려대 중국 유학생 모임이 작성한 시위 반대 대자보가 나란히 붙어져 있다. 지난 11일 해당 모임이 부착한 홍콩 경찰의 폭력 진압과 시위대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주장이 담긴 대자보가 훼손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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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로 나선 ㄱ씨는 대부분 중국인들이 홍콩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립’과 ‘폭력’ 두 가지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ㄱ씨는 “홍콩 시위대가 말하는 독립은 중국으로부터 독립이 아닌 사법과 정치체계의 독립”이며 “시위대 중 폭력적인 사람도 있지만 일부 과격한 행동 때문에 전체를 잘못봐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홍콩인들에게 폭력은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한국이나 미국은 투표로 정부를 견제할 수 있지만 독재 정권에 맞서는 사람들은 정부와 평화롭게 소통할 수 없다는 뜻이다.

ㄱ씨는 중국인도 홍콩 시위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사람들 지지가 없으면 홍콩 시위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봤다. ㄱ씨는 “홍콩 사람들은 단지 그들만을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어내려는 게 아니다”며 “자유롭고 민주적인 홍콩이 훗날 중국 전체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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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4·18 기념관 소극장에서 열린 ‘홍콩 운동: 연대가 중요하다’ 포럼에서 등가원 이화여대 홍콩 유학생모임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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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 학생은 “대자보를 훼손하는 일부 중국인 학생들이 감정적으로 밉지만, 절대 배척해선 안 된다”며 중국 학생들과도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지난 12일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을 막으려다 중국 학생들로부터 욕설을 들었다.

당시 한씨 모습이 담긴 영상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홍콩독립지지하는고려대’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라갔다. 비난·조롱 댓글이 달리며 약 300회 이상 공유됐다. 한씨는 “대자보를 훼손하고 저를 욕한 사람은 중국 유학생이지만, 저를 가장 옆에서 지켜준 분도 중국 유학생”이라며 “불평등과 심한 빈부격차 속에 비슷하게 살고 있는 홍콩과 중국 사람들은 연대해 싸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홍콩 유학생도 중국 학생들에게 연대를 요구했다. 등가원 이화여대 홍콩 유학생모임 회장은 “한국에서는 누구나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대자보를 훼손한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은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며 “앞으로 서로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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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홍콩이공대 캠퍼스에 진입한 경찰이 체포한 학생들을 향해 곤봉을 휘드루며 위협하고 있다. 홍콩|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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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돌이킬 수 없는 내전 상태가 됐다는 건 과장이 아닙니다.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한 정부는 폭력조직을 동원해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사상자가 늘고 있지만 정부는 아무 반응없이 시민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이날 포럼에선 홍콩 현지와 전화연결도 진행했다. 홍콩인 ㄴ씨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통해 전해졌다.

ㄴ씨는 홍콩이공대 졸업생이자 교직원이다. 지난 18일 이공대 시위 현장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ㄴ씨는 가까이서 본 이공대 현장을 “재앙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시위대는 경찰이 봉쇄한 캠퍼스에 갇혔다. 형편없는 자원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경찰이 응급의료팀과 언론도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고 있다고 전했다.

ㄴ씨는 “홍콩의 시스템은 모두 무너졌고, 정부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우리는 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을 똑똑히 봐주세요. 홍콩 상황을 알아주려는 노력, 지지한다는 작은 말 한마디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기 전 ㄴ씨는 구호를 외쳤다. 포럼에 참석한 한국, 홍콩, 중국 학생들은 한국어·영어·광둥어로 따라 외쳤다. “5대 요구사항 중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5 Demands, No more less)”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의 승리를 위해(Fight for Freedom, Stand with Hong Kong)”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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