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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퇴근하지 못한 어느 산재 노동자와 유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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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오늘 내가 죽는다는 걸…알았다, 오늘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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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찍 안 끝날 거 같아”

마지막일 줄 몰랐던 통화

넘어진 타워크레인에 낀 남편

회사는 “산재 처리 불투명”

애도보다 보상금 ‘밀당’만

원청-하청 구조·매뉴얼 무시

오늘도 비극은 계속된다


“나 오늘 (일찍 안 끝나고) 그냥 정시에 끝날 것 같아. 아까 너무 여기 (비가 와서 바닥이) 엉망이어서 장화 사러 갔거든. 그래서 그때 전화한 거야.”

“알았어. 마치고 연락해.”

강은경씨(32·가명)는 이것이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통화였고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였다. 지난 9월28일의 일이다.

자동차 정비공이던 남편 박모씨(31)는 평소 기계 조종을 좋아했다. 크레인, 굴착기 등 중장비 자격증을 딴 뒤 이직을 준비했다. 지난 9월24일 이동식 타워크레인 업체 면접을 보고 온 박씨는 아내에게 말했다. “26일부터 나오래. 한 달에 이틀 쉬어.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 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쿠팡맨 배송사원과 중장비 업체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박씨는 중장비 업체 취업을 선택했다. 출근을 시작한 9월26일의 첫 현장은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 공사장이었다.

출근 사흘째 되는 날 남편은 새벽 5시쯤 집을 나섰다. 오락가락한 비 때문에 일이 일찍 끝날 수 있다고 했지만, 아내와의 마지막 전화통화에선 정상 근무를 하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그는 양산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이 출근한 뒤 강씨는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토요일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오전 11시30분쯤 부산 동부경찰서 초량지구대의 연락을 받았다. “박○○씨 배우자 되시나요? 남편이 현장에서 사고로 돌아가셨으니 부산대 중증외상센터로 지금 바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엔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계속 의심할 수 없는 내용의 말들이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어머니의 차를 타고 곧장 부산대병원으로 향했다. 현실 감각이 없었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병원에 도착해보니 남편은 영안실에 있었다. 이미 사망했다고 했다. 장례식장으로 찾아온 경찰은 강씨에게 사고 경위를 간략히 설명했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 공사 현장에서 이동식 타워크레인이 지반 침하로 넘어졌는데 크레인 조종실 운전석 뒤편 보조의자에 있던 박씨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끼여서 사망했다고 했다. 영안실에서 남편의 시신을 확인한 강씨는 응급실로 가서 사인을 물었다. “큰 외상은 없고 눌려서 숨을 못 쉰 것 같다. 압착성 질식사”라는 의사 소견을 들었다.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오후 2시24분쯤 부산 동부경찰서로부터 남편의 사고와 관련해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택시를 탔다. 경찰서로 가는 중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부산 동구 북항재개발지구에서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부산 오페라하우스 건립 공사는 한진중공업이 시공을 맡고 있다. 한진중공업 하청업체인 동우건설은 숨진 박씨가 일했던 조은이동타워크레인으로부터 이동식 타워크레인을 임차했다.

원청인 한진중공업과 동우건설·조은이동타워크레인 직원들이 빈소에 찾아왔다. 산업재해 처리, 보상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건설업의 경우 하청 노동자는 원청이 가입한 산재보험의 일괄적용을 받는다. 원청 혹은 하청과 장비 임대차 계약을 맺은 건설 중장비 업체 소속 노동자도 지난해 초부터 산재보험과 관련해선 하청 노동자로 간주돼 일괄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장례식 첫날 저녁 빈소를 찾은 조은이동타워크레인 사장, 숨진 박씨와 함께 크레인 조종석에 있었던 크레인 기사 김모씨는 땅이 꺼지는 바람에 크레인이 넘어졌다며 사고 경위를 전했다. 이튿날 저녁 빈소에 온 한진중공업·동우건설 직원들은 유가족에게 산재 처리가 될지 불투명하다고 하면서 ‘합의’를 제안했다. “계약관계가 명확하게 돼 있었으면 저희들도 좋죠. 명확하게 보상 금액을 말씀드릴 수 있으면 저희도 좋은데 애처롭게도 계약이 어디하고도 안돼 있어요. (보상 액수에 대한) 패를 꺼내지 않고 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렇진 않습니다.” 한진중공업 직원이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는 항의했다. “하루아침에 새끼를 잃었는데 자식 몸값을 어떻게 계산을 하고 있겠냐”고. 한진중공업 직원은 명함도 남기지 않고 빈소를 떠났다.

장례가 끝나고 일주일가량 뒤 한진중공업 측은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하지만 유가족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다.

한진중공업은 무엇이 그리 급했기에 장례식장에 찾아와 산재 처리가 쉽지 않다고 운을 띄운 것일까. 기업에 생길 불이익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건설 현장에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산재보험료가 높아지고, 향후 관급공사 입찰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유족에게 ‘산재 처리가 될지 불투명하다’고 말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씨가 이동식 타워크레인 보조기사로 일하다 사망한 만큼 근로계약서가 없어도 산재 처리에는 문제가 없다. 회사는 9월 말까지 보조기사로 일해보고 10월1일자로 정식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수습기간 중이라도 산재 처리가 가능하다. 강씨는 “장례식장에 찾아와 유가족에게 산재가 안될 것이라고 속인 것은 용서가 안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의 죽음은 사전에 위험성 평가와 안전조치를 제대로 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도 유가족의 마음을 무너지게 했다. 크레인 보조기사였던 박씨는 사고 당일 오전 10시15분쯤 크레인 조종실 내 운전석 뒤편에 있었다. 당시 크레인은 부산 오페라하우스 지하주차장 기둥·벽체 거푸집 조립 등에 필요한 1.2t짜리 목재 묶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갑자기 크레인을 지지하던 전방 오른쪽 받침대 아래 지반이 가라앉았다. 받침대가 지반 속으로 빠져버리자 균형을 잃은 크레인이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크레인 조종실이 땅과 부딪치는 과정에서 크레인 운전기사 김씨는 조종실 앞유리가 깨지면서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하지만 운전석 뒤편 보조의자에 있던 박씨는 충돌 충격으로 찌그러진 조종실 내부에 끼이는 바람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씨는 처음엔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조용해졌다고 한다. 신고를 받은 119구조대가 오전 10시30분쯤 현장에 도착해 조종실 안에 갇힌 박씨를 구조해 부산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1시간여 만에 결국 숨졌다.

건설 현장에선 많이 무거운 편이라고 할 수 없는 1.2t짜리 목재 묶음을 옮기다가 크레인이 넘어진 것은 크레인을 받치던 앞쪽 오른쪽 받침대 지반 안에 직경 0.6m, 깊이 2m 이상의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멍 때문에 지반이 무너지면서 크레인도 쓰러지게 된 것이다. 이 구멍은 연약한 지반의 힘을 높이기 위해 땅속에 파일(말뚝)을 박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이동식 타워크레인 장비 사용 매뉴얼을 보면 크레인 설치 작업 전 설치할 위치 지반 안에 구멍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지반 침하의 원인이 된 구멍에 대한 사전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매뉴얼과 현실이 따로 놀았던 것이다.

건설 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도 사전 안전조치 미비에 영향을 끼쳤다. 박씨의 경우처럼 현장에 투입된 지 사흘밖에 되지 않은 크레인 보조기사가 다른 업체가 앞서 진행한 말뚝 박기 과정에서 구멍이 생겼을 것이라고 예측하긴 어렵다. 어디에 크레인을 설치해야 할지, 설치하는 곳의 지반은 단단한지 등은 부산 오페라하우스 공사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온 원청(시공사)이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도급 단계가 늘어날수록 안전조치에 대한 원청의 책임은 옅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청은 사고가 나면 책임회피만 해왔고, 크레인 사고를 비롯한 건설기계 장비 사고 예방을 위한 실질적 조치들이 현장에서 잘 진행되지 않고 있는”(전국건설노조 이승현 노동안전국장) 것이 현실이다.

남편의 사고와 죽음을 목도한 강씨는 슬프거나 놀랍다기보다 화가 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매뉴얼만 지켰다면 막을 수 있고,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7살 아들과 5살 딸은 자주 아빠 사진을 본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 안 보고 싶어?’라고 물으면 아들은 말한다. “우리가 아빠한테 갈 수 없는 것처럼 아빠가 우리한테 올 수 없잖아.” “사고가 하루아침에 가족으로부터 아빠를 빼앗아갔다”고 강씨는 말했다.

■기업에 ‘두 번 우는 유가족’…“사고 원인 알려주는 곳 없어…사업주가 산재 자료 주도록 법 개정해야”

산업재해 사망사고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뿐 아니라 ‘왜 가족이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 길 없는 답답함과도 싸워야 한다.

지난 9월28일 타워크레인 전도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박모씨(31)의 부인 강은경씨(32·가명)는 크레인업체나 원청인 한진중공업으로부터 지금껏 사고 원인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듣지 못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장례식장에서 간략한 사고 경위만 설명했다. 강씨는 “유가족이지만 언론 보도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어떤 과정으로 일이 처리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사고 경위 언론 등 통해 아는 수준

시민단체 “사회 자산으로 활용을”


지난 4월10일 경기 수원시 고색동의 아파트형 공장 신축공사 현장 5층에서 일하다 문 열린 화물용 승강기에서 떨어져 숨진 김태규씨(25)의 누나 김도현씨(29)도 같은 심정이라고 했다. 장례를 치른 뒤 김도현씨는 사고 현장, 경찰서, 고용노동부 등을 오가며 사고의 진실을 찾으려 애썼다. 김씨는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싶은데 그걸 제대로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며 “동생이 국회의원 아들이었다면 과연 정부가 이 죽음을 이렇게 대했을까”라고 되물었다.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유족이 재해 입증에 필요한 자료를 사업주로부터 쉽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고, 사업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제재하는 방향으로 산재보험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 연구자, 시민사회단체 등도 산재예방정책 수립의 기초가 되는 산재정보를 충분히 얻기가 어렵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는 “안전보건 연구자들도 산재 관련 공공 데이터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7월 말까지 활동한 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개인정보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한 뒤 일정한 시점에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작성한 재해조사 보고서를 공개해 (사고 예방 등을 위한)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재해조사 보고서가 임의로 편집돼 일부 내용만 공개되고 있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개 확대를 고려하고 있지만 구체적 방법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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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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