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글·언론 인터뷰로 밝혀
中공안, 홍콩시위 활동가 정보 추궁
사슬결박·폭행에 中 국가 강요까지
성매매 혐의 허위 자백후 겨우 석방
주영 중국대사 초치 “영국 분노 표시”
지난 10월 홍콩 시위대들이 영국 국기를 들고 중국 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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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홍콩에서 중국 본토로 갔다가 중국 당국에 15일간 붙잡혀 있던 전직 홍콩 주재 영국 영사관 직원 사이먼 정(29). 그가 중국에 붙잡혀 있을 당시 중국 공안에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20일 정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및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BBC·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홍콩 국적의 그는 지난 8월 중국선전(深圳)에서 15일간 억류돼 구타를 당하고, 사슬로 의자에 묶고, 잠을 안 재우는 등의 고문을 당했다.
정은 지난 8월 8일 정오 무렵 비즈니스 회의 참석을 위해 뤄후(羅湖) 검문소를 거쳐 선전으로 갔다가 홍콩으로 돌아오는 길에 연락이 끊겼다.
사이먼 정과의 인터뷰를 보도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사진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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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래프가 보도한 정의 증언에 따르면 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고속철도 역인 웨스트 카오룽 역에서 자신의 ID 카드를 인식했을 때 게이트가 열리지 않자 장치가 고장난 것으로 생각했다. 이곳의 출·입경 관리소 등에는 중국법이 적용되며, 중국 공안 등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곧바로 공안 여러 명이 정에게 다가와 휴대전화와 가방, 안경을 빼앗았다. 그들은 "위에서 명령을 받았다"며 정을 인근에 감금했다. '호랑이 의자'라는 철제 고문 장치에 고정시킨 뒤 최장 48시간 동안 심문했다. 한 공안은 "우리는 너를 영국 스파이로 의심하고 있다"며 절대 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또 다른 공안은 정을 '직업교육센터'에 보낼 수 있다고 협박했다. 유엔은 이 시설에 최소한 100만명의 위구르족과 다른 이슬람교도가 구금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홍콩 시민이 지난 8월 연락이 끊긴 사이먼 정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포스터를 들고 있다.[EPA=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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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수갑과 족쇄를 차고 특정 포즈를 강요받는가 하면, 몇시간 동안 쪼그리고 앉아있어야 했다. 움직이면 경비병이 경찰봉으로 그를 때렸다. 자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대신 중국 국가를 노래해야 했다. 정은 "그들은 내가 중국 국가를 부르면 새로운 힘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공안은 고문하면서 정에게 홍콩 내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활동가들의 정보를 말하라고 압박했다. 공안은 영국이 홍콩 시위를 선동·조장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이에 정에게도 시위와 관련해 맡은 일이 뭐냐고 반복해서 물어봤다. 심지어 그에게 영국 영사관 내부의 배치, 직원 출입증, 영사관 내에서 일하는 국내정보국(MI5)과 해외정보국(MI6) 요원들에 관한 정보를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정은 "마치 짜인 극본에 따라 심문이 이뤄졌다"며, "자신은 변호사는 물론 가족과의 접견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붙잡힌 지 2주가량 지난 8월 24일 스스로 성매매 혐의가 있다고 인정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중국에선 성매매 혐의자를 최대 15일간 구금할 수 있다.텔레그래프는 "중국 당국은 특정 인물에게 굴욕감 등을 주고 주변의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허위 성매매 혐의를 자주 씌운다"고 전했다.
지난 8월 중국 공안에 붙잡혔다 15일만에 풀려난 전 홍콩 주재 영국 영사관 직원 사이먼정. 그는 중국 공안에 고문을 당했다고 폭로했다.[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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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더 이상 중국으로 출장을 갈 수 없어 영사관 업무를 그만뒀으며, 신변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재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당국이 자신에게 스파이 활동을 할 것을 제안하면서, 만약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외부에 알리면 다시 중국으로 납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정은 그러나 홍콩 시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중국 당국을 고발하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기 위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한 홍콩 시민이 지난 8월 연락이 끊긴 사이먼 정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포스터 옆에서 영국 여권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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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고문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중국 대사를 초치해 강력히 항의했다. 라브 장관은 “(중국 대사에게) 영국의 분노를 표시했다”며 “중국에 억류되어 정이 받은 치욕적인 학대에 대해 우리는 격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이 관련자들에 대해 검토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중국 외무부나 런던 주재 중국 대사관은 사이먼 정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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