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세월호의 육상 거치가 진행 중인 전남 목포 신항에서 한 시민이 노란 리본을 바라보고 있다. /더팩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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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적 언행 없어 모욕죄 어려워"…노려만 봐도 유죄되기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극우 성향의 혐오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세월호참사 유족들의 단식투쟁 현장에서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는 등 '폭식 퍼포먼스'를 보인 것에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앞서 유족 측은 이들의 행동이 희생자와 유족을 포함해 시민을 조롱하고 모욕한 행위라며 6월 신원이 특정된 A씨 등을 검찰에 고소·고발했다. 검찰 조사에서 A씨는 폭식 퍼포먼스에 참가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고소인을 모욕할 의사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역시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이지만 모욕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 측은 모욕죄 공소시효 5년 완성을 코앞에 두고 법원에 검찰의 처분을 직접 판단하는 재정 신청을 한 후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를 잃고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에 뛰어든 유족을 조롱해 유족은 물론 사회적 공분과 충격을 샀던 사건이다. 그럼에도 재판에 넘길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굶고 있는 유족 앞 폭식' 기소 피한 이유는
형법 311조는 모욕 범죄를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로 정의하고 1년 이하의 징역,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공연성 △특정성 △사회적 평가 저하가 입증돼야 한다. 폭식 퍼포먼스의 경우 세월호 유족이 단식농성을 벌이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공공연히 이뤄져 공연성을 충족하지만,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고 직접적으로 모욕적 언행을 하지 않아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켰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울 거라는 의견이 나온다. 서혜원 변호사(서혜원 법률사무소)는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명예를 실추시킬 경멸적 감정을 표출하는 언사나 행동을 해야 하는데, 검찰은 이런 측면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퍼포먼스를 모욕적 행위로 봤더라도 광화문 광장 특성상 세월호 유족 외에도 많은 시민이 있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봤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폭식 퍼포먼스가 모욕죄 성립요건을 전부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유족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퍼포먼스를 기획한 정황이 확실한 만큼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법무법인 해율)은 "하급심 판례에 따르면 소수지만 직접적 언행 없이 모욕죄가 성립된 사례도 있다. 일련의 퍼포먼스가 모욕죄로 성립될 수 있을 것인지가 주요한 쟁점으로 보이는데 법원의 판단을 한 번 받아볼만한 사안"이라며 "재정신청 후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면 모욕죄의 구성요건과 범죄 성립에 대한 유의미한 판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2014년 한가위 연휴 시작이기도 했던 9월 6일 오후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단식농성장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일부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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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상처만 있고 기준은 없는 현행법
모욕죄 성립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은 것은 오래된 일이다. 모욕적 언행을 한 사실이 분명해도 피해자를 특정하지 못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0년 7월 전국 대학생 토론대회에 참석한 강용석(50) 전 새누리당 의원은 여성 아나운서를 두고 "승진하려면 모든 걸 다 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 모욕죄로 기소됐다. 강 전 의원은 징역6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은 여성 아나운서 직업군을 비하한 것에 불과해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최근 판례 참고가 불가피한 하급심 법원도 피해자 특정을 주요하게 보고 있다.
폭식 퍼포먼스의 고의성이 문제된 것처럼 모욕죄로 처벌할 만한 행동 판단도 들쑥날쑥하다. 지난 2013년 6월 70대 남성 김 모 씨는 같은 교회에 다니던 신도 옆에 다가가 주먹을 쥐고 노려봤다. 모욕죄로 기소된 김 씨는 이듬해 9월 항소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아 벌금 30만 원을 물었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는 "김 씨의 행동은 모욕적 발언이 없었어도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경멸적 감정을 표현해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발언의 어휘 하나에 유무죄가 갈리는 등 기준이 애매한 실정이다.
세월호특별법제정을 촉구하며 46일간 단식을 해 온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지난 2014년 9월 2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시립동부병원 입원실에서 건강이 악화돼 단식 중단을 선언하고 침대에 누워있다. /더팩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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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일각에서는 모욕죄를 판단하는데 확실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정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모욕 행위는 피해를 입은 당사자 또는 일반인의 관점으로 환원해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는지를 판결의 척도로 삼는다"며 "최근 성범죄 사건을 다룸에 있어 성적 수치심을 일반인의 관점보다 사건 당사자에게 맞추는 성 인지 감수성을 길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복잡한 사실관계를 가진 모욕죄 역시 무엇보다 당사자의 감정과 피해 인식에 맞춰 심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월호참사 희생자와 유족을 비하하는 사건이 잦았던 만큼 유무죄와 상관없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봐야 할 필요성도 있다. 폭식 퍼포먼스 사건에서 유족 측을 지원하는 오민애 변호사는 "세월호 유족 분들이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퍼포먼스를 기획했다는 점에서 모욕죄로 성립될 구성요건이 충분하다"며 "참사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조롱행위가 만연한 현실에서 범행에 대한 책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사건이다. 재정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민사소송이라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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