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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집에선 두 아이 엄마, 보육원 가면 '일일 엄마'… 엄마 품 느끼게 해주고 싶어 심장 소리 선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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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맘스케어 봉사' 워킹맘 김향미씨

따뜻한 품 그리운 보육원 아이들 돌봐주고 올 때마다 안쓰러워 눈물

심장박동 녹음한 '허그 토이' 만들어… 이달부터 전국 보육원에 보급하기로

"초기 애착은 아동 발달에 큰 영향… 내 심장 소리 들으며 잠 들었으면"

"엄마, 나 이거… 엄마! 나 이것도…."

미운 네 살 아들 하준이, 더 미운 일곱 살 딸 하율이. 두 아이와의 아침·저녁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혼내고 소리 질러대는 엄마가 미웠을 텐데 어느새 아이들은 나의 품에 파고들어 '엄마, 엄마…' 짹짹거린다.

'이 녀석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엄마를 부를까.' 아이들이 잠에 들면 문득 자문한다. 이내 그 어릴 적 나도 하루 수백 번도 넘게 불렀을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2014년 3월, 회사의 여성 선후배들 100여 명과 보육원을 찾는 '맘스케어 봉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갓난아이 하율이를 키우기 위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직후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안아주고 먹이고 씻기는 일일 엄마가 되는 일은 아쉬운 뭉클함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부를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하루 새 친해진 일일 엄마가 떠난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결국 일일 엄마를 배웅하는 보육원 아이들의 애타는 눈빛을 바라볼 때면 눈물을 훔쳐야 했다. 첫 아이를 키우며 엄마 감성이 폭발하던 시절인 나는 특히 그랬다.

'세 살 정도면 온종일 쫑알쫑알 궁금한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보육원 아이들은 말이 서툴렀고, 놀이나 자극에 크게 반응하지도 않아 보였다.

조선일보

100여 명의 회사 여성 임직원들과 함께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한 인형을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김향미씨는 “애착은 아이의 정서와 두뇌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고 했다. 김씨가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의 집에서 허그 토이에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한 뒤 두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향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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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지 않은 신입 사원부터 자녀가 장성한 임원까지, 봉사단 활동을 함께한 임직원들이 5년 동안 이런 안타까움을 공유했다. 우리의 활동을 돕던 아동발달 전문가와 머리를 맞댄 결과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애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애착은 인지와 정서, 사회성뿐 아니라 두뇌 발달에도 영향을 주는데, 특히 생후 36개월 이전 주(主) 양육자와의 초기 애착이 전 생애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따뜻한 품이 부족한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애착 인형'을 만들기로 한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맘스케어 봉사단원들이 직접 그린 그림에, 사람의 심장박동 소리가 녹음되는 장치가 더해진 일명 '허그 토이(hug toy)'다. 회사 봉사단원과 일반인 참가자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한 허그 토이를 전국의 보육원 아이들에게 보급하는 게 목표다. 이달 중 시작되는 특별한 시도에 나도 동참했다.

19일 저녁 경기도 부천의 집에서 허그 토이에 내 심장박동 소리를 녹음했다. 증폭기가 장착된 녹음기를 가슴에 갖다 대자 '쿵쾅쿵쾅'하는 심장박동이 선명히 들려왔다. 갓난아이 시절부터 이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던 하율이가 "엄마, 이 인형은 뭐예요?"라고 묻는다. "엄마가 상황이 어려워서 함께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엄마 심장 소리를 담아 보내줄 거야" 했더니 하율이가 "그럼, 이 인형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네"라며 인형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허그 토이의 네임택에 내 이름 석 자를 정자로 적으며 뿌듯한 뭉클함을 느꼈다. 내 아이를 안아주듯 혼자 남겨진 우리 아이들을 안아주는 따뜻한 세상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허그 토이가 보육원 아이들의 부족한 정서를 채워줄 근본적인 대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그 아이들을 밤낮으로 돌보는 보육원 선생님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이런 것들을 세상과 공유하기 위한 매개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봉사단 활동을 지켜봐 온 남편은 쓸 만한 물건을 보육원에 기부하곤 한다.

마흔이 된 지금, 어린 시절 저축한 안정된 정서는 삶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풍성한 나눔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라고 확신한다. 내 심장박동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 하율이, 하준이 동생이 누굴지 몹시 기다려진다.

[김향미 한화생명 브랜드전략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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