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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논설실의 뉴스 읽기] "시진핑 애국주의에 젖은 중국 1020세대, 홍콩·티베트 말만 나와도 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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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청년들, 폭주하는 민족주의]

- 중국 신세대 어떤 교육 받기에

애국주의를 공산당 충성이라 규정, 시진핑 사상을 앱으로 가르쳐

- "문화혁명 때 집단광기 보는 듯

"美농구팀 단장 "홍콩시위 지지"에 1020세대 'NBA 보이콧' 운동

건국영화 '나와 나의 조국' 대히트

- 中유학생 "韓학생보다 돈 더 낸다"

"年3만불 이상 버는 중국인 1억명… 한국서 2등 취급받을 이유 없어"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지금 베이징 전람관에서는 중국 정부 수립 70주년(10월 1일)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70년을 되돌아보는 전시회다. 역사에는 공과(功過)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마오쩌둥도 "공7, 과3"(덩샤오핑)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특별전에는 '공'만 있다. 1950년대 말 4000만명이 굶어 죽은 '대약진 운동'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의 광풍도 농촌 하방(下放) 운동을 소개하는 정도로 뭉갰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정치 풍파를 진압했다"는 사진 한 장이 전부다. 반면 시진핑 주석 시대를 소개하는 전시관 앞에는 '미래'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하다. 특별전이 시작된 날 시 주석은 정치국 회의에서 "애국주의가 중화 민족정신의 핵심"이라고 했다. 시내 곳곳에는 "중화 민족은 한 가족" "중국몽(中國夢)을 같이 건설하자"는 선전 표어가 나붙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민족주의 열기다.

◇중 "사드, 한국 국민이 반성해야"

오랜만에 베이징 외교 소식통을 만났다. 사드 얘기가 나오자 "박근혜 정부가 중국의 관심을 중시하지 않고 너무 급하게 결정을 내렸다"며 "한국 정부의 실수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본다"고 했다. 한국 주권까지 양보한 '사드 3불(不)'로 봉합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임시 합의"라며 "트럼프 대통령도 주한 미군 철수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사드 철수는) 왜 못 하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와 국민이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사드는 날로 고도화하는 북핵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방어 무기인데도 도입 결정이 '실수'이고 '반성'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자체 개발한 사드는 좋지만 주한 미군이 쓰는 건 안 된다" "중국 정부가 우려 사항을 말할 때 한국 정부와 국민은 귀담아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외국 손님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무례하다"고 했더니 유감 표명은커녕 "사드 때문에 중국이 취한 (보복) 조치가 잘못됐다는 건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통신 업체 화웨이 퇴출에 한국의 동참을 요청한 것에 대해 "한국 정부와 기업이 옳은 것을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사드 이후 새로운 변수가 생기면 안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이 미국 요구를 따르는 건 옳지 않고, 사드 때처럼 보복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에 배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관영 매체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총알받이가 돼서는 안 된다" "중국의 표적이 되지 말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특사는 두 번이나 중국 지방관이 앉는 하석(下席)에서 시 주석을 만났다. 중국의 한국 무시와 협박이 갈수록 노골적이다.

◇한국 무시와 협박 갈수록 노골화

조선일보

광주 전남대 게시판에 중국인 추정 학생이 홍콩 시위 지지 게시물에 ‘입 닥쳐’라는 글을 적어놨다. /연합뉴스


이런 중국 내 분위기가 홍콩 시위와 관련한 중국 유학생들의 안하무인 행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우리 학생들의 신상을 캐 공격하고 현수막과 대자보를 훼손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 법을 우습게 안다. 중국 외교부는 "(유학생들이) 애국심을 이성적으로 표시해야 한다"면서도 "중국 이미지를 손상하는 언행에 분노를 표시하는 것은 당연하며 사리에 맞는 일"이라고 감쌌다.

중화권 매체의 중국 기자는 "지금 중국의 10대, 20대는 시진핑 시대 과도한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세대"라며 "홍콩·티베트 같은 주권 관련 말만 나와도 흥분한다"고 했다. 이들은 '중국이 청 말 이후 외세 침탈로 엄청난 굴욕을 겪었지만 다시 굴기했고 이제는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고 배운다. 전체주의 사회 특성상 다른 목소리는 없다. 특히 홍콩은 외세 침탈과 주권 회복의 상징이다. 홍콩이 전쟁터로 변한 와중에 중국 정부는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지침을 내놨다. '신세대 애국주의'를 중국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공산당을 향한 충성으로 규정하고 '시진핑 사상'을 교육용 앱으로 가르치게 했다. 앱 이름이 '학습강국(學習强國)'인데 시진핑(習)을 배워 강국이 되자는 의미도 된다. 공산당 장기 독재에 따른 문제를 맹목적 애국주의로 덮으려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중국 1020세대는 미국 프로농구(NBA) 팬이면서도 휴스턴 로키츠 단장이 '홍콩 지지' 의사를 밝히자 집단으로 'NBA 보이콧' 운동에 나섰다. 홍콩 시위에 대한 인터넷 악성 댓글도 1020세대가 주도한다고 한다. 중국 건국, 원폭 성공, 홍콩 반환 등을 담은 영화 '나와 나의 조국'은 개봉 이틀 만에 2171만명이 관람했고 1300억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문혁 당시 집단 광기(狂氣)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 유학한 중국 인사는 "10년 전에는 학교에서 '짱깨' 소리를 들어도 그냥 참았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이제 중국 국력이 미국에 필적하고 연소득 3만달러 이상인 중국인만 1억명인데 한국에서 2등 국민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했다. 홍콩 지지 시위를 하는 우리 대학생 앞에 중국 유학생들이 던진 10·50·100원짜리 동전이 쌓이고 있다. 중국 유학생은 "우리가 학교에 돈을 더 많이 낸다. 돈 많은 우리가 불쌍한 한국인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을 아래로 보는 중국인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미·중 수교 주역인 키신저는 "중국은 평등이란 기반에서 다른 나라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했다. 중국 5000년 역사에 외교 전담 부서가 만들어진 건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패한 뒤였다. 그 전까지는 의례를 담당하던 예부가 조공(朝貢)을 바치던 주변국 관계를 관장했을 뿐이다. 후진타오 전 주석만 해도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에서 힘을 기른다)' 가르침을 따랐다. 그런데 시 주석의 선전 기관은 '만방내조(萬邦來朝)'라는 표현을 썼다. 당나라 때처럼 주변국(만방)이 조공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는 뜻이다.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고를 내비친 적이 있다. 미국이 떠나면 중국이 덮쳐 올 것이다. '중국 갑질'에 당했던 2000년 역사가 떠오른다.

[한국서 공부하는 중국 유학생 7만명… "공산당 기관이 개입해 관리"]

中정부가 유학생회로 지침 내려



조선일보

한국에 있는 중국 유학생이 7만명에 가깝다. 2003년 5600여 명이었지만 2011년 6만명을 넘었다. 이들은 다른 나라 유학생과 달리 조직화돼 있다. 학교마다 유학생회가 구성됐고 주한 중국 대사관이 관리한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유학생을 담당하는 중국 대사관 직원 3명 중 1명은 교육부가 아니라 공산당 관련 '기관' 소속으로 안다"고 했다. 공산당원인 유학생도 적지 않다. 중국식 전체주의 특성상 공산당, 중국 대사관, 유학생회로 내려오는 지침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집단 주장이나 행동에서 빠지면 따돌림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중국 유학생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중국의 티베트 탄압에 항의하는 서울 시민에게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집단 폭력에 가담한 적도 있다. 최근 다른 나라에선 홍콩계·화교 학생들과 홍콩 시위 및 중국 인권 문제를 놓고 물리적 충돌을 벌인다. 10년 전 세대와 달리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고 중화 민족주의 성향도 강하다. 한국에서 중국에 반(反)하는 주장이나 결정이 나오면 또 제집인 듯 함부로 집단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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