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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매경포럼] 죽은 케넌이 트럼프에게 "동맹을 모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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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국을 바라보는 두 개 관점이 있다. 한쪽은 중국이 곧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다른 한쪽은 '그럴 일 없다'고 본다. 필자는 후자 쪽이다. 중국에 운이 따라준다면 미국과 비슷해지거나 약간 앞설 수 있겠지만 크게 앞설 것 같지는 않다. 여러 이유 중 하나만 꼽자면 미국은 계속 성장하는 인구구조인 반면 중국은 줄어드는 쪽이다. 중국의 경쟁력이 '머릿수'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금 미국이 행사하는 패권적 리더십을 중국이 대체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생각한다. 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나. 그렇다. 아무도 중국에서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역사상 모든 패권국은 시민권의 값어치가 높은 나라, 세계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나라였다. 아테네, 로마, 스페인, 영국, 그리고 지금 미국이 그렇다. 미국의 리더십은 그 나라 국민이 누리는 자유, 민주주의, 풍요, 혁신, 교육, 질서, 교양, 심지어 청명한 공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매력에서 발원한다. 중국에는 없는 것들이다.

위협적이지만 매력은 없는 대국을 나머지 세계가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저항하거나 봉쇄하거나. 지금 홍콩은 저항하는 중이고, 미국은 봉쇄하려 한다. 미국은 앞서 소련을 봉쇄로 굴복시켰다. 권위 있는 냉전 연구가 존 개디스는 대소련 봉쇄 전략의 당위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가 민주주의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전 세계가 전체주의라면 미국의 민주주의도 살아남지 못한다."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라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나 중국은 독재체제이고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소련만큼 미국에 위협이 된다. 중국은 소련보다 인구도, 경제 규모도 몇 배 크다.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이 미국을 에워싸기 전에 먼저 그들을 봉쇄해야만 한다. 우선 무역전쟁부터 시작했다.

봉쇄 전략은 2차 세계대전 직후 주모스크바 미국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복무한 조지 케넌이 설계했다. 케넌은 소련의 군사 공격보다 주변국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사태를 우려했다. 이들 국가의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제안한 것이 경제 원조였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줄어든 국방비 부담을 유럽 경제 재건에 투입했다. 그 유명한 마셜 플랜이다. 또 하나 역점을 둔 것은 '거점 동맹'이다. 케넌은 산업과 군사 역량이 존재하는 지역, 대표적으로 독일과 일본 같은 거점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봤다. 냉전 기간 미국은 동맹의 중요성을 한 번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결과는 이랬다.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이 이 결전을 시작할 때 함께한 동맹들은 그대로 유지된 반면 소련에 남은 동맹들은 거의 없었다."(존 개디스)

트럼프의 대중국 봉쇄는 케넌의 대소련 봉쇄와 동맹에 대한 태도에서 결정적으로 결이 다르다. 케넌이 동맹에 돈을 쓰자는 쪽이었다면, 트럼프는 동맹들로부터 방위비 협상 한 번에 몇조 원씩 더 뜯어내려 한다. "주한미군 빼면 안 되나"처럼 상대 가슴에 못 박는 얘기도 막 한다. 이것이 동맹들을 갈등하게 만든다. 중국이 지금처럼 매력 없고 위협적인 국가로 존재하는 한, 중국과 교역 비중이 아무리 크다고 한들 국가 생존을 위해 종국에는 미국 편에 서야 한다. '체인징 파트너' 유인이 거의 없다. 그러나 동맹국들의 국내 정치는 이성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반미 감정이 활활 타오를 수 있고, 이걸 정략적으로 불을 지피는 세력도 있다. 미국의 대중 봉쇄 그물에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릴 것이다.

케넌은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여러 나라가 연합해 맞서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한 나라가 큰 힘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이 말은 미국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중국을 봉쇄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그런데 트럼프가 과연 케넌을 읽기는 했을까.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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